不平則鳴

마음 가듯

*garden 2009. 10. 30. 09:55




냉장고 문짝에 더덕더덕 붙은 포스트잇들. 하루이틀 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삐뚝빼뚤한 아내 글씨로 잔뜩 씌어 있다. 빨간 줄이 쳐진 전화번호나 날짜, 시각 메모에 아이에게 당부하는 전언이나 과제도 보인다.
마시던 우유 넣어 두지 말 것. 시답잖은 T.V 프로그램 시청 말그라이.

아이 방은 벽 여기저기를 도배한 사진 나부랑이들로 눈이 어지럽다. 쫓아다녔지만 시들해진 연예인이나 모델 대신 새롭게 뜨는 아이돌로 채워지더니, 인제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으로 바뀌기도 한다. 개중에는 유성펜으로 벽을 가로지른 화살표가 가리키는 아이도 있다. 거기 달린 경고문 하나. '넌 영원히 내꼬얌!'. 하트 모양을 사이에 두고 둘의 이름이 나란히 씌어 있어서 들여다 본다. 여리고 덜 떨어진, 그리고 이기적인 듯한 이런 아이가 어찌 마음에 드는 걸까.
임마, 이런 데 신경 쓸 틈이 있냐? 넌 아직 학생이란 걸 잊음 안돼.
자도자도 잠이 쏟아진다. 제 아빠 인기척에 겨우 부시시 눈을 떴다가 쥐어박는 애꿎은 꿀밤이 억울하다.
아빠, 회사 여직원들도 눈에 거슬리면 이렇게 쥐어박아요?

사무실 디자이너의 낡은 스탠드 갓. 수작업을 할 때 말이지. 맥켄토시로 모든 작업이 이루어져 예전처럼 스탠드 불을 켤 일은 없다. 대신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작업요량이나 일에 대한 경로나 잔 가지가 무시로 붙는다. 그 옆 일러스트로 처리한 사진이 우연히 눈에 띈다. 얼굴만 키워 찍은 둘만의 사진. 렌즈가 왜곡되어 이마나 코가 두드러진다.
사랑하는 사람인가부네.
대답 대신 짐짓 수그러드는 고개짓. 볼에 홍조가 핀다.
이 팀장한테 들키지 않게 해. 가을만 되면 초조함을 못감추던데.
마흔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그네들 팀장 귀에 들리게끔 짓궂게 놀린다.

산을 돌아 호숫가에 섰다. 고즈넉한 바람이 수면에 넌출넌출 닿아 주름을 지운다. 잊을만하면 우수수 날리는 끈 떨어진 나뭇잎. 어느 때 선물로 받은 책갈피에서 쫓아나오던 고운 가을의 흔적을 떠올렸다. 바스락거리는 삶의 자취들. 환한 꽃으로 아름답던 지난 시절은 꿈이었던가.
사윈 볕에 간신히 벼린 생을 채워 아홉 구비를 돌아 선 구절초. 애닯은 소리로 주변을 일깨운다.
게 누구 없소!

수많은 계절을 지우고 넘어 마침내 이 한 계절에 닿았다. 간직하고 온 게 어디 있을까. 누군가에게라도 전하려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만 같은데. 어떤 말을 끄집어 내기 위해 끙끙거려도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노래는 갈래를 잃고 뒤엉킨 채 실마리를 풀어 낼 수 없다. 정녕 한줄 심언이라도 기꺼이 건네줘야 할 텐데.














Paganini, Sonata No.6 In E Minor. 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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