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으로 정착할 줄 모르는 빛. 그래도 생명의 근원이 거기라고 태양이 빛을 뿌리는 방향으로 쉴새없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땅. 어둠이 물러나기 전이라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듯한 숲에서 나무 사이를 떠돌거나 촉촉한 수피를 더듬으며 그렇게 서 있었다. 안개가 꼬물거리는 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바닥에서 떠있는지 땅을 딛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 사방에 늘어뜨리고 있던 감각을 거둬들이자 생각은 단순하게 되었다.
울컥할 땐 달려가던 선샤인. 갈 적마다 거금이 필요했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 간이 이층이 있는 음악 레스토랑이어서 천장이 무척 높았고, 밝은 색상의 목조로 이루어진 내부는 안락했다. 병렬로 연결했겠지. 네 조나 되는 스피커에서 뿜어 나오는 음색이 장난이 아니었다. 미8군에서 나온 원판이 한 벽면 가득 차 있었는데, 당시엔 구하기 힘들어 귀를 번쩍 튀우게 할만한 희귀 음반이 즐비했다. 알음알음으로 오는 매니아들을 위해 재즈 위주로 선별되고 가려진 음들이 난무하며 귀청을 울린다.
바깥 세상 불확실하던 시간 속에서도 그 음의 조합을 가끔씩 떠올리곤 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부대끼는 동안 조금씩 궁글려지며 고집을 꺾고 다른 이를 수용하는 방법을 익혔다. 또한 생각밖의 것에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웅얼거림에서 차츰 절규에까지 다다르는 전율의 세상, 블루스에 흠뻑 젖어 혼곤해지는 밤이 잦았다.
재즈가 직선이라면 블루스는 곡선이다.
낮엔 직선 지향이어도 밤엔 우아한 곡선에 마음을 둔다.
포물선으로 우회전을 하다가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 시간에 여기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다니. 경광등이 요란하고 주변 길목은 죄다 차단되어 있는 이런 행태의 단속은 짜증스럽다. 불특정다수의 운전자들을 모두 음주운전자인양 몰아 붙여 검색하는 행태. 의심이 가는 차량만 골라 검문할 수는 없는건가. 따지면 가타부타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는 커녕 성가신 눈빛을 던지는 행정만능주의의 관행. 상대에 대한 배려나 사안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애시당초 없다. 미쿡에 있다가 온 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동차를 갈 짓자로 몰면 금방 신고가 들어간다. 어느새 경찰차가 따라 붙는데, 운전자는 도로 한켠에 차를 세우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쓸데없는 행동은 경찰 총격을 받기 십상이다. 음주운전이 의심날 때에는 선을 그려놓고 운전자로 하여금 선을 따라 걸어보기를 요구한다. 몇 번을 시키고는 그래도 미심쩍을 때에는 영어 알파벳을 외우게 한다. 술이 취하면 알파벳을 순서대로 끄집어 내는 것도 결고 쉽지 않다.
홧병이 들었을까.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적이 많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두세 칸을 건너뛰는 서두름. 헤뜨러진 사방 짓거리들 외면하기.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에 악담 퍼붓기. 짓누르고 참다 보니 말을 꺼내기 싫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열이 나 씨근거린다. 이런 걸 보면 외관상으로는 멀쩡해도 어린 시절 어떤 경험에 의해 자각하지 못하는 상처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예전처럼 걸어다니게 되었다. 천릿길을 한달음에 쫓아가던 기억일랑 지우자. 패대기 친 원고를 다시 보다가 붉은펜으로 직직 그어 버린 한낮의 화나는 상황은 뭉개버리자. 대신 무턱대고 아무 버스나 타고 가다가 내릴 것이다. 시멘트 담장 너머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늦추어야지. 짖는 소리 두 번에 한 걸음 떼기. 구멍가게라도 있다면 냉큼 들러 음료수를 하나 달래 마시며 주인장 신색도 살펴봐야지. 먼지 낀 손바닥만한 유리창 너머 가을이 짓물러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상의 옷깃을 올리고는 떨어진 채 수런거리는 낙엽 더미를 아프게 밟으며 걸어가봐야지. 푸썩해진 흙에 구두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상관 말아야지.
격렬하게 반응하던 심장이나 폐는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불규칙하던 신진대사도 조절될 것이다. 짓눌렸던 관절이나 근육의 탄력을 살리기 위해 한발한발 차근차근 떼고 걸어가면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An Angel, etc. * Allpa kall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