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을 맴돌이

*garden 2009. 10. 20. 12:07




화창한 가을, 사색보다는 활동이 좋은 때이다. 손 차양을 하고서는 길에서 길을 더듬는 이들마다 절로 감탄한다.
역시 우리나라 가을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해.
금빛 물결로 출렁이는 이 들녘이야말로 르노와르에게 맡겨야 제격일걸. 인상파 화가 손에서 재현되는 결실과 풍요의 아우름은 어떨까. 바야흐로 두툼한 잎을 하나씩 지우는 감나무. 말간 하늘을 배경으로 잘 익은 감을 촘촘히 드러내고 있다. 유난히 감을 좋아하던 이모를 퍼뜩 떠올릴 정도로. 에메랄드 빛 하늘은 또 누구의 채색인지. 몽롱하여 갸웃거리다가 꿈에서 깨듯 한마디 중얼거린다.
참, 이번 가을엔 어찌 태풍이 오지 않을까.
잘 익은 곡식이나 과일 들에겐 분명 좋지 않겠지만, 수계가 뚜렷히 가라앉은 못이나 하천을 보면 싱숭생숭하다. 햇빛 종종대는 길, 인파가 자분거리는 걸음을 따라 흙먼지가 인다. 마른 젖줄처럼 이어져 우렁찬 낙하태생을 잃은 폭포는 바윗길을 따라 흔적만을 간신히 지릴 뿐. 사방이 바짝 말라있다. 오죽하면 갈증을 해소하러 찾아든 떼까치마저 바위 틈을 쑤썩이기만 할까.


땅바닥에 줄 세운 바구니 몇 개.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가 한가한 걸음을 불러 세운다. 당도가 높아진 사과를 깎아놓고 눈짓으로 권하다가는 당신이 성큼 집어 한 조각을 베어 먹는데, 살아온 세월만큼 패인 볼살이 실룩인다. 풍년에 쌀값은 사정없이 폭락했다. 이에 대한 항의로 벼를 수확하는 대신 논 갈아엎기가 각지에 들불처럼 번진다. 채워도 손에 쥐어지는 건 없다. 성난 사람들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비가 내렸다. 사나운 바람이 함께 운신했는지, 밤새 쉬지 않고 창문이 덜컥이며 벽 긁는 소리가 어지럽다. 바닥을 두드리며 꿈 속에도 요란한 천둥번개가 전해진다. 미처 못꺼내 둔 겨울 옷가지와 난방기구들을 생각하며 얇은 이불을 목덜미까지 끌어올렸다.
바라던 일과 바라지 않던 일이 간구대로 순번을 지키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웃어도 또다른 누군가는 울었다. 나중에는 웃는이도 우는이도 행복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빈손으로나마 살아 남아 있어야 하는 우리. 잠결이라도 세상 이치를 알 듯해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다신다.
물기를 업고 축 늘어진 나뭇가지와 산지사방 흩어진 나뭇잎을 보며, 지난 시간 느릿느릿 다가오던 봄을 만지작거렸다. 가을은 왜 이리 현깃증이 일도록 쏜살같이 내닫는가.











Castle Of Dreams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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