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혼자 집을 지키던 때가 생각난다. 누군가 있는 것만 같아 두리번거리고 힐끔힐끔 돌아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기억. 귀 기울이면 보이지 않는 뭔가가 벽을 쏠거나 나무가 걸어다니고 빗자루가 일어설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뒤통수가 섬쩍지근하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로 휴일날마다 주어지는 임무. 청첩장을 두석 장이나 들고 낯선 곳을 헤매는 꼴이라니. 인적 드문 것이 유령도시가 따로 없다. 저 블록을 돌아가면 표지판이라도 보이겠지. 부지런히 걸음을 떼는데 나를 따라 다니는 구두소리만 요란하다. 쓰레기 통이 들썩이길래 깜짝 놀라 살펴보니, 머리를 쳐박고 먹을거리를 뒤지던 유기견이 고개를 든다. 그 슬픈 눈빛에 아는 누군가의 수긍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아 객적다.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서두른다.
이게 뭐람. 호젓한 산길도 아니고. 나뭇잎 사이를 훑는 여린 햇살이나 맑은 물소리, 고즈넉한 숲의 그림자나 솔깃한 바람, 푹신한 흙, 풋풋한 갈내음 들이나 느낄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가까운 친구들도 연락이 뜸한 휴일.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허긴 나도 매일반이어서 할 말도 없지만서도.
별도 예정이 잡혀 있지 않으면 가까운 북한산에 걸음을 하는 바람에, 괜히 누가 연락이라도 하면 변명을 한다. 나를 아는 상대도 뻔하게 떠올리는 북한산. 어쩌다가 지방쪽에 있을 수도 있어서 아니라고 부인하면 알고 있다는 듯 되받는 말이, 딴산인가부네. 대답이 궁하다. 딴산이라는 이름도 버젓이 있다. 파로호와 평화의 댐 진입로에 있는 동산으로, 물가에 섬처럼 뜬 모습이 이른 아침 안개에라도 잠기면 볼만하다. 으레히 커다란 바위마다 서린 전설이 거기도 있다. 금강산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 걸음을 재촉하던 중 일만이천봉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은 것이라는데 믿거나 말거나이고. 그 딴산에 굳이 내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이를 바르게 알아들을 일도 없으니.
가을이 한창이어서 온 산이 북적인다. 단풍은 나날이 요란하고, 이를 보려고 유난을 떠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이니. 국립공원이라고 곳곳을 막아 두어 그 안쪽을 숨어서 드나드는 이와 관리공단 직원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한잔 술이 과했는지, 웃통을 벗고선 항의하는 산객도 있다. 글쎄, 옆에서 보기에도 눈쌀이 찌푸려지지만 딴은 손등과 손바닥이어서 잘잘못을 가리기도 곤란하다. 내기 싫은 돈을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악착같이 받아내려는 종교인이나 보호라는 명분으로 금을 치고 사람을 쫓아내는 이나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려고 고집 부리는 이나 솦 속 곳곳 코를 잡게 만드는 쓰레기나 꼴불견의 행태들. 결론은 이타심이 부족한 탓이다.
동호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산을 휘젓고 다니는 이들도 시끄럽다. 그게 참 이상하다. 내가 그 일원으로 속해 있을 땐 아무렇지 않은데,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이건 영 아니올시다 싶은 때가 부지기수이니.
같은 동호회원 중 닉네임을 산적이라고 쓰는 녀석이 있다. 나이가 오십 줄에나 들어서도 장가도 가지 않고 만산만 뒤진다. 와중에 어울릴 수 있는 산친구들이 좋기만 하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그리 환할까.
형님, 제가 누구유? 산적이우.
임마, 너 같은 넘 겁낼 과객이 우리나라 산 어디에 있겄누?
그넘 산적이 담배를 피다가 국립공원 직원에게 걸렸다. 다행히 구급대 복장을 한 바람에 별탈없이 넘어갔다. 이 녀석에겐 이게 무용담이다. 한동안 보이질 않더니 꾀죄죄한 몰골로 산행에 동참했더란다. 가엾기만 하여 다들 한소리낸다.
어디 아퍼?
한 며칠 피곤해서 그려.
힘없이 웃으며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흘린 쓰레기를 말끔히 봉투에 담아 내려온 녀석이 엊그제 죽었단다. 말이 막히는 것이 소식을 듣자 말자 눈물이 둑 터진 것처럼 흐른다.
이게 뭔말인가?
동료에게 전화를 냈더니 역시 울먹이며 끙끙댄다.
그게 급성간염으로 그리 되었다네. 그래도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그 몸 끌고 와선 실실 쪼개더라니. 살고 죽는 게 차암 암것도 아니네.
Ghost *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