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사과이고 싶던 기억

*garden 2009. 9. 29. 17:35




눈을 뜨자 몰입해 있던 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익숙한 자리에서 친숙한 얼굴과 웃던 방금 전까지의 기억은 왜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
말하고 실행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둠이 대수인가. 소리내지 말고 걸을 것. 조심스레 문을 연다. 맨발에 닿는 딱딱한 감촉도 좋다. 거실을 지나 미약한 진동을 따라 부엌쪽으로 간다. 냉장고를 열자 옅은 녹색 빛의 파장이 쏟아졌다. 뭉글뭉글 쫓아나오는 냉기. 여명은 이르지만 생각 한쪽을 물들이고 있던 밤이 조금씩 옅어졌다. 냉수라도 들이키면 나을까나. 머그잔을 찾아 손가락에 끼워 빙빙 돌리는 사이 엊저녁 흩여버렸던 사념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무의식중에 요깃거리를 찾다가 포기한다. 아내 마음처럼 한무더기씩 꽁꽁 싸둔 덩어리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지. 개중 보석처럼 반짝이는 사과 한 알을 보았다. 머그잔을 대신 넣어 두고 잡은 사과를 손 안에 굴린다. 굉음이 포도를 뒤흔들며 직선으로 지난다. 누가 저리도 요란스레 새벽을 깨우나. 창가로 가 고개를 내미는 사이 소란은 이미 흔적 없다. 밤새 홀연히 떨어진 나뭇잎이 사방에 어지럽다. 신록 푸르른 지난 계절을 어찌 보냈던가.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사과를 한입 덥썩 깨물었다. 가을이 잘게 부서져서는 와싹거리며 퍼진다.


큰 녀석이 마침내 첫 휴가를 나왔다. 갇힌 곳에서 이런저런 핑게로 차일피일해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난데없이 키를 키워서는 봉봉 튀어 오른다.
아빠, 저 왔어요.
전화기로 전해지는 음성은 건강하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보인다. 한편으로 사과를 베어 문다며 서걱거림이 통화하는 내내 귓가를 건드린다.
오래 전을 떠올렸다. 세상에 나기 위해 제 엄마가 진통을 겪던 날. 마침 다니던 병원에서는 뭔가 맞지 않았다. 부랴부랴 근방 대학병원으로 옮겼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사방이 들끓고 있다. 세상이 열리느라 진통을 겪는지, 대학생들의 평양축전 참가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다툼이 있던 지경이라. 전경들이 병원을 몇 겹으로 두르고 있다. 쉽게 드나들 수가 없는 건 물론 검문은 상시이다. 최루가스가 난무하여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안에서 열두어 시간 사투 끝에 나온 녀석은 건강하였다. 시골에서 혼자 올라온 어머니는 어찌어찌하여 지하철도 이용하고 시내버스도 갈아타서는 용케 병실에 찾아들었다. 봇물 터지듯 민주화를 부르짖는 통에 회사마저 시끄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던 와중. 에고, 무셔라. 눈물 콧물을 찍어내던 당신이 문득 악어가죽 백을 뒤지더니 초록색 능금 세 알을 꺼낸다. 하나는 입맛 다시는 옆 침대에 건네고 두 알을 창가 난간에 나란히 올려 두었었다.


열매가 많으면 가지가 찢어진다더니 정말이었다. 심지어는 통째로 무너진 사과나무를 보았다. 떽떼구르르 실한 사과가 저마다 흘러내린다.
우리가 나무처럼 그렇게 서 있지 않았던가. 어느 때 나무이기가 싫어 뛰쳐나가 헤맨 세월. 이제는 돌아와 나무처럼 다시 숙연해지는 시간. 인디언 서머라고 했지. 습기 없이 꽤나 화끈한 볕이 사과 열매 위에서 미끄러지며 횡행하는 날, 사방에 가을이 물결치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Toute Une Vie * Jean-Philippe Au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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