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어떻게 통해야 하나

*garden 2010. 10. 4. 16:44




무시로 오는 연락. 데스크 책상으로 가서 받는다.
"비가 와요."
비가 온다니.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 오늘 밤을 새고 내일 늦은 시각까지 원고를 써나가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작성하고 검토해야 할 문서도 많다.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올라 포플라가 내려다 보이는 이층 찻집으로 올라가 자리잡을까. 지금 이런 얘기를 던지면, 앞에서 시침떼고 있는 최 국장은 뭐라고 할까. 슬쩍 본다. 못들은 척 원고를 뒤적이던 손으로 돗수 높은 안경을 치켜올리는 중이다. 헛기침을 하는 품새가 은연중에 압박을 준다. 거침없이 내뱉겠지. 시간 내 마쳐 놓고 가요. 어림없다. 그거야말로 못가게 할 요량이다. 전선으로 채근하는 목소리. 비가 온다니까요. 대답 대신 숨을 드높이다가, 졸린 듯 답한다. 으응. 지체없이 날아드는 힐난. 차암, 멋없다. 울컥할 뻔한다. 그래, 삼사십 명이 숨을 죽인 사무실에서 데스크 책상에만 있는 전화기를 들고 쭈볏거리며 통화해봐라. 뭔말을 어떻게 하여 대화를 이어갈 것인지 난감하다. 진땀이 나 콧잔등을 훔치며 애매하게 답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귀를 쫑긋하며 안들어도 듣는 사무실 동료들이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저간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니 어떡하나. 곤혹스런 내 처지야 아랑곳없이 전화 저쪽에서는 입을 삐죽이며 말을 마구 날린다. 통화를 끝내자 목덜미가 뻐근하다.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최 국장의 걸걸한 음성이 사무실을 울린다. 건너편 이 주임을 호출하는 소리. 키가 백육십 센티미터나 되려나. 체구에 비해 성격은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아 마당발이다. 아래쪽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는데, 고만고만한 동생들이 줄줄 딸려와, 나름대로 공장에도 나가고 야간학교에도 다닌다고 한다. 이 주임이 나가더니 씩씩하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난데없는 욕지거리가 막 나온다.
"야, 이년아 그러니까 네꼴이 그모양 아니냐? 니 오래비 하소가 발바닥을 간지럽히기라도 한다면 얼릉 갔다 와라잉."
소란에 일면 키득거리는 이도 있다. 점심을 먹으며 이 주임에게 넌지시 말을 던지는 이도 있다.
"요즘 여동생이 여엉 말을 안듣는 모양입디다."
"아, 들었어요잉? 고년이 인제 대가리가 컸다고 당최 말을 안듣고는 밤 늦게 싸대니 어떡하믄 좋소잉. 집에 아부지라도 계셨더라믄 다리몽뎅이가 분질러져도 열 번은 넘었겄소잉."

사무실 직원이 수십 명이어도 전화기는 고작 서너 대. 그러다 보니 전화를 받는 행태로 저간의 사정을 얼추 짐작한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각자 처지가 수근거림만으로도 뻔하다. 이해의 폭도 당연히 따른다. 가상의 누군가를 세워 욕을 할 때는 입을 모으기도 쉬웠다. 요는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유난하다. 혹여 일과 후 술자리에 참석 못한 이들은 나중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자기 험담이나 쫓아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해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책상마다 개별전화가 놓이게 되었다. 더구나 이와는 별도로 이동전화 수단까지 일상화된 지금, 우리라는 개념은 물 건너간 지 오래이다. 어이, 모여 이번 건에 대한 의논이라도 해봐야지. 지나는 이를 잡지만 휑하니 등돌리는 상대. 오늘내일은 시간이 안됩니다. 다음주에나 미리 말해주세요.
우리가 바라는 세상살이는 점점 개별화되어 흩어져 간다. 벽을 세워 독방에라도 들면 홀가분할까.

















Le jardin * Kevin K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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