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핫바지가 싫어

*garden 2010. 9. 30. 10:47




집안일로 모인 친인척. 아이들만 신났다.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집 안팎으로 몰려 다녔다. 싸우거나 울고 웃는 소리가 안산만큼 높다. 결국 부산하던 이모가 이들을 모은다. 대청에서 그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서로 키를 대본다. 또한, 마주 앉아 누구 다리가 더 긴지 견준다. 떡 본김에 제사라고, 바야흐로 시작하는 전통놀이. 손으로 짚어가며 전래동요가 아우러진다. 노래가 그칠 때 손이 놓인 다리 임자가 술래이다. 읊조리는 중 차츰 빨라진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천사만사 다만사'. 음정을 맞춰 말을 똑똑 끊자 더욱 재미 있다. '네바지 내바지 핫바지'라고 소리칠 때에는 웃으며 서로를 가리킨다.
자란 다음에도 입을 수 있게 옷들이 크다. 특히 바짓단이나 소매 등을 접고 입었는데 그게 부자연스럽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 놀린다. 업신여김에 기분 좋을 이 없다. 한때 충청도 핫바지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는 공개청원이 선거철에 쫓아 나오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체형이 변했다. 그뿐이라면 다행이련만, 성정까지 변한 듯 여겨지니. 일면 맺고 끊음이 불명확해진 듯하여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다. 대신에 마음 한켠에 아량이라도 지니게 된 걸까. 유명 영화배우들이 배역 몰입을 위해 일이십 킬로그램씩 살을 찌우거나 빼기도 하더라만 내겐 꿈같은 얘기일 뿐이었다. 깡마른 건 아니지만 살이 쉽게 오르지 않아 일정 체중을 유지하는 편이다. 누구는 물만 마셔도 살찐다더라만. 자기 전에 면 종류나 국물까지 말끔히 해치우고서도 멀쩡한가 하면 새벽까지 말술을 들이키고도 거뜬하니 자못 연구대상이라기도 한다. 성격 탓이겠거니 예단하던 이들은 나중 이도 아닌데, 하지를 않나. 결론은 식성 때문이라고들 한다. 글쎄, 다른 이야 까다롭다지만 나야 지극히 자연스러운데 그걸 기이하게 여기다니. 억지로 쫓지야 않지만 습관성 소식과 채식 위주라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헌데 어느 때부터 허릿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다. 환절기 무렵이면 곤혹스럽다. 양복 바지마다 허리쪽 단을 드러내기 위해 세탁소에 보내는 게 다반사이니. 행여 새옷이라도 장만할 땐 일부러 큰 칫수를 고르기도 했다. 앞으로 더 늘어나면 큰일이야. 한편으로는 열심히 산행을 한다. 알다시피 기능성 등산복 등이 만만해야지. 입지 못하게 된 옷도 있어 나중에는 등산복을 평상복처럼 입고 다니게 되었다. 이도 꼴불견이다.


"너희들 바지가 왜 그 모양이냐?"
아이들은 다리에 착 감기는 바지를 입는다. 딴은 성에 차지 않은 게 편협하고 고루한 일방적 고집인가 싶어 반성도 한다. 허나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간섭한다.
학교에 다닐 적에 입던 바지가 통이 넓었다. 어머니가 외출하신 휴일에 작정하고 재봉틀에 앉았다. 뒤집어선 선을 긋고 어설프지만 발판을 밟아 박음질한다. 입어 보고는 헐거운 통을 더욱 조여 박음질했다. 부리나케 걸치고는 아뿔싸, 가슴 철렁한 적이 있다. 다리를 간신히 꿰어 넣을 수 있는데, 박음질 자리가 팽팽하다. 하나뿐인 바지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떡한담. 난감하다. 핫바지같은 풍이 싫어 줄이려고 했지, 몸의 굴곡이 드러날 만큼이나 되었다니. 근데 이즈음 우리 아이들 옷이 그짝이다. 글쎄, 다리가 길어보이는 착시효과를 노린대나. 마침 평상복처럼 입을 바지가 필요한 참에 아이가 입을 바지까지 장만했다. 근데 녀석이 이걸 입어야 할텐데. 보편적 시각과 진보적 감각은 과연 한데 어우러질 수 없는 걸까.














Schubert, Sonata for Arpeggione
제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
Cello, Mischa Mai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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