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릿고기를 잘하는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가는 내내 질척거리는 가을비. 곡예라도 하듯 구불구불한 편도차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달리는데, 차내 사람들이 어깨를 대고 출렁인다. 아까부터 깔리는 이승철 노래가 감미롭다. 이 친구는 결혼 후 오히려 노래가 대중적이 된 것 같아. 간혹 건너편에 마주 오는 자동차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빗방울들. 미간을 찡그리며 툴툴댄다.
오릿집이 정말 오리 밖에 있나부네.
소문난 집이라니 기대되는데.
백숙과 양념구이로 주문했으니 취향대로 골라서들 먹어.
아닌게 아니라 북적대는 주차장. 간신히 차를 대고 들어가자 아직 도착한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장소가 외진 탓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몰려드는 인파, 제대로 장내 정리조차 되지 않아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조류독감 등으로 파리 날리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그야말로 시장판이네.
예약을 했어도 상차림은 커녕 주문한 음식조차 나오지 않아 한참 동안 입을 빼물고 있다. 물컵을 달래도 들은체 만체, 술을 먼저 달래도 함흥차사이니. 허겁지겁 내 온 음식을 상에 놓던 이가 결국 국물을 엎지르지를 않나.
이거 오늘 제대로 먹을 수는 있을려나?
오랜만에 만나서는 고기라도 들겠답시고 입맛을 다시던 녀석들도 씁쓸하다. 바지에 얼룩이 지겠어. 세면장으로 갔더니, 하나뿐인 소변기에 누군가 달라붙어 있다. 슬리퍼도 없어 기다리는데 이거야 정말. 슬쩍 들여다 보니 뒷모습만 보이는 어른은 당최 돌아설 기미가 없다. 어두컴컴한 벽 구석을 응시하는지, 아니면 몸에 이상이 있어 자가 점검 중인지. 대청에서 꼬마가 아장거리며 다가와선 서있는 나를 보고 갸웃댄다. 웃음이라도 지어 선한 인상이라도 줘야지. 미소를 확인한 꼬마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맨발로 세면장으로 들어간다. 그제서야 바짓춤을 추스르며 어설프게 돌아나오는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 내앞에서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고는 계면쩍게 웃는다.
공손한 아이 인사와 어른의 선한 웃음 앞에서 문득 미안해졌다. 세상에 대해, 나를 아는 많은 이들에게.
오늘도 강렬한 맛만 골라 입에 담았다. 커피를 열 잔 가까이 마셨고, 찾아온 저자와 점심시간에는 소주 한 병씩을 나눠 마셨다. 양념으로 범벅한 더덕의 알싸한 향을 씹으며, 갈무리되지 못하는 불평과 불만과 오기를, 발에 채이는 빈 깡통 내지르듯 툭툭 건드리며 싱겁게 내뱉었다. 어떤 형태로라도 세상이 뒤집어져야 하는데 왜 끄떡없냐 말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거친 바람을 맞으며 홀로 광야에 서 있었다.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안고서. 아, 한 모금 온정이라도 품어 봤더라면. 어느 때 누군가를 기꺼이 안으려 한 적도 없이.
Forgotten Song * George Skaroulis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두움에 딩굴어 (0) | 2010.10.13 |
---|---|
마지막이기 위해서는 (0) | 2010.10.09 |
어떻게 통해야 하나 (0) | 2010.10.04 |
핫바지가 싫어 (0) | 2010.09.30 |
아직은 푸르른길 (0) | 2010.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