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어두움에 딩굴어

*garden 2010. 10. 13. 12:01




오후 내 뭉그적대는 서점 안. 참고자료를 구할 참이었는데 엉뚱한 책만 뒤적인다. 벌써 서산머리에 해가 뉘엿거릴게다. 그래도 흡족하다. 풍족한 식사 후에 달디 단 후식을 입에 머금은 것처럼 감기는 문장들. 어떤 대목에서는 소리내 읽으며 감탄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는 책먼지. 정수리 안쪽을 자극하는 잉크 냄새도 좋다. 아까부터 서점 귀퉁이에서 실랑이 중인 엄마와 아들이 내는 사소한 소란마저 정겨우니. 판형이 크고 시원스런 장정의 색상이 호화로운 책을 막 들었다. 소리나게 책장을 넘긴다. 뾰족한 목소리로 다그친다.
봐. 이책이 싫니, 싫어?
아이가 심드렁하게 받는다.
엄마가 알아서 해줘요.
지금 눈과 손이 손전화기 속 게임에 빠져있느라 늦가을 꿀벌처럼 쉴틈없다.


우리 아이는 휴일에도 함께 놀아주지 않는 아빠가 야속하다.
왜 그렇게 책을 읽어요?
아빠가 숙제를 해야 하거든. 책을 읽어 해결해야 돼.
누가 숙제를 내줘요?
아빠보다 힘센 사람이 많아. 숙제를 해야 그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하지만 알다시피 내가 숙제를 해야 할 나이는 지났다. 숙제가 없어도 늘 있는 듯 열중하고 심각하며 불안하다. 시끌벅쩍한 곳에 쉽게 쫓아가지 않으며 자폐증이라도 앓는 듯 외따로 떨어져서는 스스로에 몰입하며 끙끙거리는 나쁜 습관. 이러다간 자칫 폐인이 될지도 몰라.


걷고 또 걸어 기계적인 걸음을 멈추자 기우뚱한다. 몸을 세워도 관성으로 저만큼 나아간 정신. 단내가 그제서야 느껴진다. 땀으로 범벅되어 온몸이 척척하다. 이런 때 바람이라도 마중 나온다면 좀 좋아! 옷을 여미며 두리번거린다. 가라앉은 구름. 종일 바쁘다가도 어느새 한자리에 뭉쳐 인상을 쓴다. 텁텁한 가운데 비 냄새가 묻어 있다.
그리고 비를 만났다. 산을 넘기는 글렀다. 온 길을 내려가기도 마땅찮고. 한때 인가가 있었음직한 손바닥만한 공터, 나무와 바위 틈새에서 몸을 웅크린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말미를 잃어버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두서없이 평평하게 치우고 안정되게 기대 앉았다. 조바심을 가지지 말자. 마침 배낭 안쪽에서 꺼낸 술도 있는 터. 생각나는 대로 혼잣말을 일삼는다. 차츰 어둠이 내린다. 친구처럼 어둠을 덮고 끼고 누웠다. 설마 곰이나 호랑이가 나타날 일이야 없겠지. 시체처럼 몸뚱이를 내버려 두려고 해도 모기나 바닥을 기는 다지류 벌레들의 움직임에 질색인 감각들. 만상이 들끓는다. 사위가 물을 먹어 주저앉았어도 살아 있는 온갖 것들. 나무가 팔을 들고 넘어오는가 하면 바위가 꿍얼거리기도 한다. 한때 이곳에 머물렀을 사람들의 생과 아쉬움과 한탄이 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끊었던 연과 매듭이 거미줄처럼 얽히기도 한다. 바람에 잎을 떠는 키큰나무의 애달픔도 본다. 어둠이 물러나기 전에 비가 잦아들 기세이다. 새 날에 나는 어디서 가쁜 순례의 발걸음을 떼고 있을 것인가.


















Blueprints Of The Heart
* David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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