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떠올리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 나는 왜 세상에 나왔을까. 몸의 여기저기를 만져본다. 손아귀에 드는 말랑말랑한 살의 감촉과 단단한 뼈의 결합이 실감나지 않다니. 이미 들풀은 벌레들에게 뜯어먹히거나 시들어 보잘것없다. 날갯짓이 애처러운 잠자리는 그래도 유유히 허공을 난다. 이들과 다른 무엇이 내 속에 있다는 건지.
포유류 중 영장류의 으뜸이라는 인간. 상대적으로 큰 뇌를 지녀 우선 지능이 높다. 또한, 직립보행을 하며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직립보행을 하면 시선을 먼곳까지 둘 수 있어 좋다. 손을 사용하는 것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당연히 사람이라면 걷고 달릴 수 있다. 여기에 파생적으로 이동에 대한 욕구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발달한 수단에 의존하다 보니, 사람들이 실제 걸을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어느새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기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가. 허나 요즘에서야 새삼 건강을 위해서라도 트레킹이 각광을 받으면서 걷기에 대한 관심이 당면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지방 곳곳을 잇는 도로나 철도, 항공로 외에도 자전것길이나 지역 특색에 맞게 꾸민 제주도올레길을 비롯하여 지리산둘레길, 산소길, 삼남길, 옛길, 언저리길 등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길이 생겨, 걸으려는 사람이 사방에 넘쳐나는 것을 본다.
어떻게 걸어야 할까. 진지하게 접근하는 이들이 낯을 붉히며 은근히 묻기도 한다. 자세나 보폭, 장비에 대하여. 어떤 운동화가 좋은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 걷기 좋은 길이 어디에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
빗대어 아류가 넘쳐나는 것을 썩 좋아하지야 않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세태. 제주도나 지리산 등에 못지않게 수도권에도 걷기를 위한 길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다.
예년에 없이 기나긴 추석연휴로 사람이 북적대는 북한산둘레길을 갔다. 서두르고 급조된 길이라 아직은 잇기에 급급한 흔적이 완연하고, 마을을 지나칠 적이면 일상을 침해받은 주민들 불만이 들리기도 한다. 길 곳곳에 스민 이야기 등이 쉬이 아우러지지 못하여 쓴 입맛을 다시기도 하지만 산과 들, 언덕과 물, 흙과 숲을 완만하게 드나드는 오솔길에서 행복한 표정을 발견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식구들을 이끌고 너도나도 나선 길, 격렬하지 않아도 송글송글 맺히는 땀, 기분 좋은 나른함에 젖은 채 꿈결처럼 지나는 시간. 오롯히 생각에 잠겨 걷다 보면 마주치는 이들에게서 진지함이나 장난스러운 몸짓이 범벅되어 건강하게 비쳐진다. 더구나 등산 위주로만 드나들던 곳을 부담없이 휘저을 수 있다는 데에야. 수도권에 적을 둔 이들 자부심이랄 수 있는 북한산을 옆에 두고 걷는다는 두근거림을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사기막골 입구에서 시작하여 불광동까지 걸은 길. 하늘에서는 종일토록 뭉게구름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몸집을 키우거나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