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죄인에 대한 유배형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가 있다. 귀양지 집 둘레를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돌리고 안에 가두는 방식이다. 실제로, 가시나무로 처마까지 둘러 햇빛을 가리니 백주대낮에도 어두컴컴해 하늘을 쳐다보면 마치 우물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 했다. 이를 익히 아는 이들이 그 속을 '산무덤'과 다름없다고 하였다. 금성대군은 세종대왕 여섯째 아들이다. 형인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대하여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공모하였다는 죄명으로 소수서원 옆 순흥부 내죽리에 '위리안치'되었다. 하지만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과 순흥 안씨 등과 연합하여 단종 복위를 위한 군사를 모으고 훈련을 시키던 중 관노의 밀고로 발각되었다. 금성대군은 물론, 수백 년을 순흥에서 집성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