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죄인에 대한 유배형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가 있다. 귀양지 집 둘레를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돌리고 안에 가두는 방식이다. 실제로, 가시나무로 처마까지 둘러 햇빛을 가리니 백주대낮에도 어두컴컴해 하늘을 쳐다보면 마치 우물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 했다. 이를 익히 아는 이들이 그 속을 '산무덤'과 다름없다고 하였다.
금성대군은 세종대왕 여섯째 아들이다. 형인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대하여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을 공모하였다는 죄명으로 소수서원 옆 순흥부 내죽리에 '위리안치'되었다. 하지만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과 순흥 안씨 등과 연합하여 단종 복위를 위한 군사를 모으고 훈련을 시키던 중 관노의 밀고로 발각되었다. 금성대군은 물론, 수백 년을 순흥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한양에서 벼슬을 하는 일흔두 집이나 되던 수많은 순흥안씨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죽계수 핏물이 십리를 넘게 안정면 동촌리까지 흐르다가 간신히 끊어졌다 하여 그 동네 이름을 '피끝마을'이라고 불렀다.
잎자루에 날개가 있는 탱자나무 잎은 길이 삼~육 센티미터로 어긋나게 핀다. 작은 잎은 단단하고 질긴 가죽질이며 윤기가 있다.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이 나오기 전인 오월경 흰 꽃이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에 한두 개씩 달려 핀다. 열매는 팔,구월에 지름 삼 센티미터 정도의 둥근 장과가 달려 노랗게 익는데, 울퉁불퉁하게 생겼으며 향기가 좋으나 먹을 수 없다.
구귤나무라고도 하는데, 줄기에서 녹색인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굵고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어긋난다. 예로부터 탱자나무로 생울타리를 한 집에는 도둑도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는 속설이 있듯이, 탱자나무 울타리 안팎으로는 쥐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철저한 가시장벽이 펼쳐진다.
* 때로 대청 끝에 선 어머니는 가슴을 한손으로 문지르곤 했다. 가시가 든 것처럼 아프다고 했는데, 스스로를 옭아맨 어떤 형벌을 느낀 건 아닐까. 코로나 사태 등으로 본의아니게 갇힌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형벌로 느끼지 못하는 삶의 감옥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자유를 부르짖어야 하나!
Bindu, You Have Planted A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