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한귀퉁이에 있는 후배 집에 들렀다. 사람이 드문 소로에서, 어쩌다 만나는 이들 눈이 나에게 머물러 어리둥절하다가 후배에게서 웃음을 머금는다. 오후 툇마루에서 노란 햇살받이를 하던 누이가 수줍게 맞는다.
상을 물리고 누이가 툇마루에 놓인 화분을 옮긴다.
"이런 일은 마땅히 사내가 해야지."
누이를 물리치고 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장독대 앞 바닥이 고르지 않아 화분이 삐뚤빼뚤 놓였다. 개중 하얀 꽃을 달고 있는 치자나무에 코를 대고 눈을 감았다
치자나무 화분을 사 왔다. 치자나무는 시름거리더니 지극정성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기를 지웠다. 화초 키우기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가 고집하여 치자나무를 다시 집에 들여다 놓지만 이게 여간 까다롭지 않다.
치자나무는 늘푸른나무로, 6~7월 유백색 꽃이 핀다. 반그늘진 곳에서 자라며 내한성이 약하여 토양 비옥한 사질양토에서 잘 자란다.
불가에서는 '담복(薝蔔', 영어로는 'Cape jasmine'이라고 한다. 강희안은 원예전서인 '양화소록'에서 '치자'를 '귀한 꽃'이라 했다. 거기에 '꽃 색깔이 희고 기름진 것과 꽃 향기가 맑고 풍부한 것, 겨울에도 잎이 변하지 않는 것과 열매로 황색 물을 들이는 네 가지 이점이 있다' 고 예찬했다.
치자나무 열매를 깨뜨려 물에 담가두면 노란 치자 물이 우러나온다. 농도가 짙을수록 노란빛에 붉은 기운이 들어간 주황색이 된다. 이것으로 삼베, 모시 등의 옷감에서부터 종이까지 곱게 물들이는 천연염료로 사용하였다. 이는 열매에 'crocin'과 'crocetin'이라는 황색 색소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각종 전(煎) 등 전통 음식 색깔을 내는 데도 빠질 수 없는 재료였다. 열매는 한약재로도 쓰여 '가슴이나 대장, 소장에 있는 심한 열과 위 안 열기, 속이 답답한 것을 낫게 한다. 열독을 없애고 오줌이 잘 나오게 하며, 황달을 낫게 한다. 여기에 소갈을 멎게 하며, 입 안이 마르고 눈에 핏발이 서며 붓고 아픈 것도 낫게 한다'라고 '동의보감'에 소개된다. 원예종인 위 사진 겹꽃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