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보물섬

*garden 2014. 4. 22. 15:40




일이 있어 달려간 도심 외곽. 그나마 경전철이 닿아 다행이다. 개찰구를 나서며 보니 눈에 띄는 사람이라야 나를 포함해서 겨우 너댓 명 뿐. 막막한 계단을 내려와 보는 낯선 역사 밖은 황량하다. 회오리바람이 건들거린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방향을 정하려는데 이쪽으로 오는 이가 있다. 트렌치코트에 청바지 차림의 홀쭉한 사내. 턱 밑에 구레나룻도 있어 일순 경계한다. 멀끔한 나야말로 양복 차림이어서 이 동내와 이질감이 느껴질 거라고 생각하는 찰라 사내가 와 섰다. 사람을 보는 게 두려울 지경이라니. 용건이 무엇인가. 상대가 툭 말을 던진다.
'여기 보물섬이 어딥니까?'
보물섬이라니, 스티븐슨의 '보물섬' 말인가. 어릴 적 친구집에서 그 동화책을 빌려온 날엔 억센비가 쉼 없고 천둥번개도 요란했다. 짐 호킨스와 의사 리브시가 해적 빌리 본즈의 보물섬 지도를 손에 넣게 되면서 벌이는 모험에 나도 따라가서 마음을 얼마나 졸였던가. 주방장으로 변장하여 배에 탄 존 실버가 무서운 해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이는 사투를 손에 땀을 쥐고 읽은 기억이 있다.
해가 길어져 훤한 서쪽 하늘에 빗질하듯 늘어선 구름이 떠있다. 인적 드문들 설마 무슨 일이야 생길까. 대수롭지 않은듯 눈을 들어 사내를 똑바로 본다. 무미건조한 표정이 일순 흔들렸다.
'어떤 보물섬 말입니까?'
사람마다 보물이라 여기는 게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귀하디 귀한 보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하찮은 물건일 수도 있고. 설마하니 번쩍거리는 금은보화를 숨긴 자리를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걸까. 눈길을 피한 사내가 얼버무린다.
'그게, 아 저, 보물섬낚시터를 찾는데 어딘지 몰라서요.'
'아, 그런 보물섬은 저도 모르겠네요.'
돌아선 어깨가 가엾다. 방금 본 사내의 눈이 생각나지 않았다. 동공이 비어 있었던가.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 앱으로 길찾기를 하던데. 멀어지는 사내를 눈으로 쫓는다. 휘청거리는 봄날에 기형적인 그림자가 밭둑에 걸쳐져 어기적대며 올라간다. 산지사방 흩뜨리는 꽃 향기라고는 맡을 새도 없이 시커먼 물에 까닥거리는 찌만 응시하는 사내가 나와 닮음꼴인듯 여겨진다. 피폐한 시간 속에서 마냥 무력해져 보물섬이라도 찾으려고 내내 허우적거리는 우리이지 않은가.












George Winston, Variations on the Kanon by John Pachel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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