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一音

Lanfranco Perini, Ave Maria

*garden 2016. 12. 26. 19:34




장날인가. 지나는 길에 들른 괴산 청천 시골장터. 구경하며 제수거리라도 장만할 참이었는데, 북새통을 비집고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신 길바닥에 전 편 차떼기 장사치에게서 과일 한 상자를 샀다. 돌아나오는 길, 잰걸음으로 앞을 지나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키가 나보다 두 뼘은 작았는데, 집채만한 보따리를 머리에 얹어 두어 자칫 사람이 깔릴 것처럼 아찔하다.
"히야, 예삿재주가 아냐!"
걸을 때마다 보따리가 까닥거리는데, 양손에 각각 짐 하나씩을 더 들어 서커스 공연을 보는 듯하다. 요즘도 저렇게 짐을 이고 가는 이가 있다니. 예전 할머니가 똬리에 얹은 물동이에서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고 가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나이도 차지 않은 여자가 저리 큰 짐을 머리에 올릴 엄두를 어떻게 냈을까. 걸음에 따라 도드라진 엉덩이가 요란한 춤을 춘다. 목 힘으로 떠받힌 보따리도 흔들린다. 위아래의 묘한 흔들림이 가히 한 왕조의 균형처럼 듬직하다. 놀라운 광경을 훔쳐보는 것을 눈치챘을까. 아주머니가 걸음을 멈추었다. 작달막한 몸집이 뒤돌아섰다. 세상 누구하고 싸워도 지지 않을 눈초리가 이쪽으로 온다. 찔끔해서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연해졌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올을 입에 머금은 아주머니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어여 와!"
무슨 소리인가. 뒤돌아본다. 저만큼 대여섯 살 되는 꼬마 하나가 손에 쥔 장난감에 눈이 팔려 주춤거리고 있다. 장바닥에서 떼를 써 득템했을까. 제 엄마 힘든 지경은 꿈에도 모르는 아이가 지청구에 화들짝 쫓아왔다. 돌아선 여인네가 아이까지 달고 걸음을 뗀다. 엉덩이가 팽이 돌듯 신 나게 흔들리며 사라져간다. 지지대 하나 없어도 끄떡없이 실려가는 머리 위 한 살림. 오, 장한 여인네여. 오래 전 멸실된 줄 알았던 신기를 촌구석 장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심어지권

 








Lanfranco Perini, Ave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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