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무상 심약해진 건가. 가끔씩 주어지는 스트레스나 과로를 주체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몰두할 만한 다른 일이 필요하다. 활동적인 일이야 지금으로도 충분하여, 시간이 나면 책을 읽었다. 서가에 있는 책이나 쌓아둔 책 가운데 무작위로 뽑아서 읽고 또 읽었다. 어떤 책은 진작 읽었는데도 내.. 不平則鳴 2013.04.24
결혼이 구원인가 친인척이 모인 자리에서 으레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을 받는 재정이. 그렇찮아도 혀 짧은 소리를 내는 편인데, 말이 더욱 빨라진다. '아으, 식구들한테만 오면 듣는 말이네.' 은행에 취업한 지 해가 넘어 제법 샐러리맨 티가 난다. 식구와 동떨어져 지낸 자취생활에 이력이 났고, 거기에 .. 햇빛마당 2013.04.19
화사한 여로 꽃이 피었다고 한다. 난데없이 눈이 내려 꽃을 덮었다고 했다. 이를 비가 씻었다. 바람이 요동친다. 사월의 뿌연 하늘과 제대로이지 않은 기온으로 어수선하다. 발목에 통증이 도져 입을 앙다물기도 했다. 걸을 때는 걸음 수를 세며 발을 뗐다. 어제는 여름이었고, 오늘은 겨울이다. 땀으.. 不平則鳴 2013.04.16
사랑한 다음 순간 이제 겨울은 흔적 없다. 그럼, 과연 봄인가. 사무실에 빈 자리가 많이 생겼다. 지난 해 이맘때 쯤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청첩장을 책상머리에 갖다 놓는 직원이 꽤 있었다. 두세 사람이 그럴 적만 해도 입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근사한 계절에 뜻깊은 행사로 웃을 수 있어 기쁩니다. 헌.. 不平則鳴 2013.04.09
봄 밤 치마저고리 두어 벌을 하룻밤낮 동안에 만들어야 한다며 한숨 쉬는 어머니. 부지런한 손을 따라 혼잣말을 줄줄 뇌까린다. '옷을 부탁하려면 진작 해야지. 말만 꺼내 놓고서는 지가 시간 다 잡아묵고 인자서야 닥달하믄, 여편네 하고서는.' 그 여편네는 나도 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점.. 發憤抒情 2013.04.02
바다 건너 아프리카까지 무료함을 지우려는 걸까. 내내 눈밭을 맴돌던 낙타가 한순간 서서는 우리 밖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본다. 마악 장엄한 사막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참이었는데. 나야말로 낙타 등에 얹혀 성큼성큼 흔들리며 걷다가 깜짝 놀랐다. 순하디 순한 눈을 보니 부끄러웠어. 몸을 돌려 내려오는 데 .. 不平則鳴 2013.03.27
봄날 공상 사랑은 맹목적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랑이 길을 잃고 헤매는 계절. 그렇다고 사랑이 나중 아무 데나 발 뻗고 주저앉는다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사랑은 오직 사랑 그 자체이므로, 사랑은 길을 잃은 채로도 온전하게 자기를 지킬 줄 안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지난 다음에도.. 햇빛마당 2013.03.25
진혼의 시간 발걸음을 늦춘다. 병원 복도를 지나는 동안 서두르며 높아진 숨을 가라앉혔다.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기, 차갑게 주시하며 거리 두기 등을 의미 없이 중얼거렸다. 따르는 발자국 소리로도 알 수 있지만 돌아본다. 아이가 찔끔한다. 돗수 높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입을 옹다문 게 녀석도 긴.. 햇빛마당 2013.03.19
봄 머리에 꽃샘추위나 황사 때문만은 아니야. 열이 뻗쳐 코 안 실핏줄이 몇날 며칠 터졌다. 메마른 건기여서 더욱 그런가. 해도 죽을 병은 아니어서 맹맹한 채로 지나치기로 했다. 날이 풀리자 괜찮아졌지만, 콧물 등의 감기 증상도 없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맙소사! 냄새를 전혀 맡을 .. 不平則鳴 2013.03.12
갇힌 길 한 뼘 찬바람에 뺨이 얼얼합니다. 입김으로 손을 녹이고 습관적으로 옷깃을 여미다가는 내버려 둡니다. 웬간하면 견뎌내야겠지요. 봄 냄새를 슬쩍 맡으려면 이런 바람이라도 몇 번 더 맞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젯밤에는 외출중에 후회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두툼한 외투가 여간 성가셔.. 不平則鳴 2013.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