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결혼이 구원인가

*garden 2013. 4. 19. 09:05





친인척이 모인 자리에서 으레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을 받는 재정이. 그렇찮아도 혀 짧은 소리를 내는 편인데, 말이 더욱 빨라진다.
'아으, 식구들한테만 오면 듣는 말이네.'
은행에 취업한 지 해가 넘어 제법 샐러리맨 티가 난다. 식구와 동떨어져 지낸 자취생활에 이력이 났고, 거기에 진작 캠퍼스 커플임을 공개했으니 당연한 채근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상이었다. 상대 여자가 졸업 후에도 취직이 되지 않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게 이력서를 넣은 곳만도 사,오십 군데가 넘었다는데. 말이 그렇지, 까맣게 타들어가는 본인 속이야 오죽했을까. 그러다가 두어 달 전 간신히 육개월 보장 인턴이나마 취업했다는 소식에 식구들이 내 일처럼 받아들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 얘기가 나올 법하다.
이삼십대의 삶이 팍팍하다는 보도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먹거리 물가가 오름세에 있고, 전월세 부담이 커진 점을 들어 엥겔-슈바베 계수가 급등했다고 한다. 이를 들어, 고용 확대나 생활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에, 결혼이 필수라는 가치관이 희석되었다는 보건복지부 조사도 있다. 이는 고용불안정과 결혼비용 증가 등에 기인한다. 한편으로는 이혼에 대한 인식도 관용적이어서 사유가 있으면 이혼해야 한다라든지 이혼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취업여성이 결혼을 계기로 사직하는 대다수의 경우는 배우자의 반대나 자녀양육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불신풍조가 팽배하다.

말이 나오자 너도 나도 입을 모은다.
'우리야 살만큼 살았다만 앞으로 너희들이 걱정이야. 인구고령화에 고령자 중심의 복지제도로 향후 재정악화야 불을 보듯 뻔하거든. 조세를 부담할 생산인구는 감소하고, 세입부진에 성장률의 하락, 경기부양 효과 감소 등은 미래가 아닌 금방이라도 닥칠 뻔한 수순이야.'
'그래도 나중 산수갑산을 갈지언정 퍼준다면 다들 좋아하니.'
'뻔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는 이가 왜 그렇게 많아! 신기할 정도야.'
남자들은 거의 정년을 앞두고 있으니 지난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얘기가 진지해지는 게 싫은 여자들이 말을 자른다.
'그래서 재정아, 그쪽에서는 결혼 얘기 안하니?
'에이, 아직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애들헌테.....'
나중 얘기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앞길이 구만리인데. 꼭 결혼을 전제로 생각할 건 없어.'

사랑과 결혼은 엄연히 일치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결혼하면 사랑하지 않는 부부들은 사랑이 끝났기 때문인가. 심지어는 결혼한 지 한주일만에 헤어지는 부부도 있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걸 연애하면서 왜 몰랐는지 아리송하다. 애들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결혼시키면 주어진 의무도 끝나 홀가분해지리라 생각한다. 결혼한 그 순간부터 또 다른 갖가지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척하는 걸까, 정말 모르는 걸까.
'결혼을 해도 걱정, 안해도 걱정이라면 한 다음에 걱정할 것이다'라는 명제도 있다. 다들 그걸 따르겠지만 나야말로 생각이 바뀌었다. 평생을 매어 있었다. 움직인 반경이래야 겨우 목줄 길이만큼이다. 어느 때 피레네 산맥 한구석에서 헤맨다든지 인적 없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지방을 홀로 횡단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렇게 꼬물거리다가 누워 지워진들 어떠랴.
'재정아, 원없이 사랑해라. 마음에 맞는 상대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숨어 있는 부분도 파헤쳐라. 부닥치는 어떤 일에든지 열중해라. 결혼이야말로 가장 나중에 고민해라!'













David Lanz, A Whiter Shade Of P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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