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고개 비탈밭에 웅크린 녹산아지매. 바지런한 손길 따라 어느덧 머리 위에서 자글거리는 해. 한나절이 넘었다. 겨우 두 고랑 해치우고서는 한숨이다. 오늘 따라 진척이 없네. 일어서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지러운 걸음을 뗀다. 밭은 아지매에게는 귀한 세상이고, 밭을 나오자 또 다른 세상이.. 不平則鳴 2011.11.29
구월고개 학예회날이다. 열일 제치고 달려온 동네 어른들. 서로 안부나 근황을 묻느라 여념없다. 그러다가 선생님에게는 깍듯하게 허리를 굽힌다. 드디어 마련한 연극무대가 열렸다. 연습 때에는 단락마다 끊어져 볼품 없었는데 막상 시작하자 그럴 듯하다. 아이들도 긴장하여 자기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 더러.. 不平則鳴 2011.09.05
기억을 깨우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앞뒷집에 기거해 오감서 살믄 좋제?" "어릴 적에도 한 동네서 만날 싸웠는데 쪼그랑 망태기가 되어서도 다시 치고받으믄서 살락꼬?" 오랜만에 모여 왈가왈부하는 친구들. 자라서 너도나도 일가를 이뤄 쫓아나가더니, 인제 어떡하면 돌아올까 궁리를 한다. 결론은, 나.. 不平則鳴 2010.03.02
살이라는 굴레 마주치면 토라지고 새침하여 흘기거나 뽀로통하고 가녀리며 단정하고 일면 예쁘장하던 여자애들. 어느새 세월이라는 강을 몇 겹이나 넘어서는 부끄러운 게 없다. 가까이 와선 스스름없이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보채지만 은연중 느낄 수 있다. 어느새 투박해진 손마디를. 이마나 눈가 자글자글한 주름.. 不平則鳴 2009.07.06
쏟뜨린 국에 데어선 한낮 거리가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멕시코의 어느 마을 같다. 난무하는 백색 태양과 끊어진 인적. 바람도 없이 늘어진 가로수 아래 좌판만 덩그렇다. 토속 목걸이나 장식 걸이 등을 늘어놓은 인디오도 졸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연신 하품을 해댄다. 오묘한 잉카의 소리라는 삼뽀냐Zampon~a라도 연주하면 .. 不平則鳴 2009.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