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살이라는 굴레

*garden 2009. 7. 6. 16:37




마주치면 토라지고 새침하여 흘기거나 뽀로통하고 가녀리며 단정하고 일면 예쁘장하던 여자애들. 어느새 세월이라는 강을 몇 겹이나 넘어서는 부끄러운 게 없다. 가까이 와선 스스름없이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보채지만 은연중 느낄 수 있다. 어느새 투박해진 손마디를. 이마나 눈가 자글자글한 주름이 알게모르게 자리잡혀서는 초라하게 만드는 꼴이라니. 그래도 화들짝 웃고서는 속으로 반짝 보이는 금니를 수줍게 가린다.
내 마이 늙었제?
아아, 시큰한 눈가라도 감춰야지. 여자애를 보듬어 안았다. 젖은 새처럼 품 안에 들어 여린 가슴 콩닥거리는 모습을 토닥인다.
아니, 아직도 고운 자태는 여전하네.
너도나도 손을 잡아 끌어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어릴 적 모습이 지워지고 낯선 중년 아저씨, 아주머니로 나앉은 어색함도 한편으로는 우습다. 들은 지 한참되어 스스로도 낯설기만 한 내 이름이 난무하고 술잔이 날아든다. 곧이곧대로 마시지 않으면 그대로 끼얹을 태세로. 이게 얼마만이지? 오랜만이네, 친구. 떠들썩함을 즐기는데 입구쪽이 어른거린다. 하얀 모피로 몸을 감싸 토끼같은 인영이 나타났다. 자그마한 체구는 멈칫거리다가 맵시 있게 코트를 열고서는 한쪽에 정하게 개켜두는 모습이 세련되어 보인다.
쟤는 누구지?
가까워지기 전에 옆자리 친구에게 슬쩍 물어본다.
니는 미경이도 모리나?
내 무심함을 탓하듯 뒤쪽을 지나던 여자애가 등짝을 철썩 후리며 말한다.
아아, 걔.
얼핏 듣기는 했다. 나와 줄곧 한반으로 지나던 우영이. 남자애와 여자애가 같이 다니면 큰일나는 줄 알고 있던 내게 찝적대던 명숙이, 숙자, 영란이. 그냥 친구처럼 다가들면 좋았을 것을. 꼭 일러바칠 일을 찾아내 선생님께 고자질하거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맨살을 꼬집어 한며칠 흉을 남기기만 할 적에 미경이 저 계집애는 내 친구 우영이를 콕 찍어두었다.
니는 내꺼니까 다른 애한테 눈길 주면 안돼.
어릴 적부터 암팡진 티를 내더라니 결혼까지 이르렀다.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삐죽대며 한켠에서 수근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얼마 전에도 여자 동기들 자리에 나타나선 자기 남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일일이 매조지를 했다니. 그렇게 살게끔 진작 습성이 되어 있었겠지. 서울에서 우영이를 만난 김에 슬쩍 물어본다.
너 마누라 등쌀에 점점 젊어지는고만.
이 녀석이 꼬리를 내린다.
야야, 말도 마라. 한 시간이 멀다하고 확인해대는 통에 꼼짝 못해.
엄살을 부리면서도 낯은 환하다. 사랑이란 미명하에 굳이 속박되어선 평생 헤어나지 못하는 유쾌한 굴레. 누군가는 파란 밧줄로 서로를 동여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빨간 밧줄로 서로를 칭칭 동여맨다. 동여맨 밧줄이 끊어져 서로의 속박에서 벗어나버린 삶도 있다.
보는 이들이 갸웃하며 신산하다고들 한다지만, 내가 좋다면 그 속박이 어디에도 견줄 데 없이 좋은 삶의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나.












Pirates Of The Caribbean * The Medallion C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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