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봉정암 오르는 고개

*garden 2009. 7. 1. 14:20




먹는 일은 중요하다. 또한 즐거워야 한다.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웃는 중 한쪽에서는 티브이가 왕왕댄다. 오늘 서울은 수은주가 삽십이도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더웠나 보네. 다들 얼핏설핏 듣다가 톤이 높고 빠른 기상캐스터의 말투에서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다른 나라 일처럼 무심할 수밖에. 여기도 그에 못지 않다. 장마전선이 오르는 탓이다.
공기는 찐득하고, 커진 해가 하늘을 반이나 덮은 듯 게슴츠레하다. 걸음을 떼는데 습한 기운이 훅훅 뿜어진다. 옷이 땀에 절어 척척 감긴다. 바람도 여지껏 요동이 없어서야. 비교적 평탄한 수렴동 길을 지나 구곡담계곡을 구비구비 오르는 길은 고역이다. 그나마 수려한 주변 경관이 위안이다. 봄과 여름 사이를 장식하던 아구장나무, 시든 꽃 흔적이 애닯다. 숲을 밝히던 함박꽃나무도 꽃잎이 말라 낱개로 떨어지는 중이다. 살이가 영속적인 줄 알았더니 때로는 똑똑 끊어지기도 한다. 이런 의외성이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닌가. 옷이 접히는 자리에 마른땀이 희끗희끗한 소금기로 드러난다. 그러고도 눈썹에 달라붙거나 입술에 감기는 땀을 훔치느라 성가시다. 빨랫감을 쥐어짜듯 몸도 비틀어 물기라도 탈탈 털어내고 가면 어떨까. 꼬무락대는 동안 너도나도 불덩이가 된 듯하다. 발정난 황소처럼 여기저기서 더운 콧김을 훅훅 내는 걸 보면. 억센 더위와 습기에서도 더욱 진한 초록. 곳곳에 도사린 소沼와 담潭이 차암 푸르기도 하다. 쪽빛 하늘과 찰진 흙 색깔이 섞여 만들었는지, 유록 물빛이 투명하여 바닥까지 내비친다.
중국 청량산에서 구한 부처의 불뇌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자장율사가 서기를 따라 움직일 때도 이랬을까. 적멸보궁 중에서도 지세가 가장 뛰어나다는 곳, 봉정암 아래 깔딱고개에서 한참을 치어다 보았다. 수많은 바위 조각들이 흘러내리다가 포개고 업고 짓눌려선 사태지어 있다. 거기 계속 머물러 있지는 않을 터, 한참 내려 나중 어디에 안착할 수 있을건가. 구름도 없건만 아득한 하늘에서 사자후처럼 터뜨려지는 뇌우가 있어 으르릉대기도 한다. 별안간 후드득 긋는 장대비가 지나기도 한다. 만수담 위쪽으로 걸음마다 함께 이어져 온 용아장성능선이 바야흐로 끝을 보이는 곳, 비로소 한쪽 시야가 트인다. 순식간에 쳐올라 고도감을 높인 결과이겠지. 장딴지에 알이 밴 것처럼 단단하다. 힘이 빠져 무릎을 구부리기 힘들 정도이니. 핑게김에 잠시 쉬었다 갈까. 목젖이 쿨럭이도록 물을 들이키고는 그늘 반석에 앉았다. 안정한 대기가 똬리 튼 것을 본다. 나른하여 그냥 늘어질 것만 같다. 얼마나 더 올라야 할까를 가늠하다가 체념도 한다.
봉정암을 거친 사람들이 골짜기로 쏟아져 내린다. 우쭐우쭐 내리다가 터덕터덕 걷고 허겁지겁 지나는 중에 쉬어가자고 애원하는 말도 들린다. 나무 아래서 병든 닭처럼 꾸벅대는 나를 힐끗 보더니 그만 채근하여 내려간다. 와중에도 한 생이 지나지 않았을까. 후두둑 소리내던 비가 그치자 햇살이 밝다. 삐죽삐죽 고개 디민 암릉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떠올랐다. 기댄 등을 세운다. 눈앞에 우뚝한 버드나무 한그루. 비스듬히 내린 빛이 온순한 품을 더듬었다. 버드나무가 가지를 슬쩍슬쩍 흔든다.


어릴 적 어머니는 우리가 바르게 서기를 음으로 양으로 기원하였다. 다라니의 일환인지, 이른 봄날이면 연둣물빛 오르는 버드나무로 회초리를 장만해 둔다. 소용된 기억은 거의 없지만, 당신이 집에 안계실 적에도 회초리는 부엌 찬장 위에서 야무진 손잡이를 내비쳐 조무래기들의 행세를 다잡지 않았던가. 버들피리 등으로도 친숙한 버드나무에서는 해열제인 아스피린의 원료를 추출한다. 이 나무는 여인이나 모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비 대신 짚는 지팡이도 바로 버드나무로 만든다.
그런데 여기 천이백 고지에 왠 버드나무란 말인가. 생장에 필요한 물길도 없을 뿐더러 토양 기반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혹여 관음보살이 양류관음으로 현신할 적에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쥔 모습을 보인 데에서 연유하는 걸까. 고개 너머 봉정암과 설악의 광활한 기척은 잡히지 않는다. 허나 낭창한 버드나무를 보며 이제까지 오른 걸음의 피로가 불현듯 가시는 듯 하다. 하늘이 태양이 산이 우레가 절이 바위가 걸음이 하나같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세상. 삶인들 죽음인들 진작 구분되어져 있었을까.












On my Wings * Ka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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