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꽃을 피우는 시간

*garden 2009. 7. 14. 11:58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집은 금새 폐가가 되었다. 틈은 벌어지고 지붕이 내려앉는다. 문 손잡이나 경칩이 녹 슬어 안팎 소통을 차단했다. 마른 덤불 수북한 곳을 망촛대가 거침없이 올라 가린다. 해가 짜글짜글해 견딜 수 없는 한낮, 카메라를 들고 헤매던 남녀가 때를 훌쩍 넘기고 식당에 들어섰다. 분위기를 보고는 꺼리는 듯 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잡았다.
이곳 경관이 볼만해서 들렀는데 어찌 저리 변했나요?
요즘에사 자고나면 바뀌는 세상, 제대로 견디는 게 있나요?
퉁퉁한 살집의 주인이 심드렁하게 주문을 받는다. 졸린 눈으로 아래위를 살피며. 겉옷이 꽉 끼어 빈약한 몸이 드러나는 남자는 답답해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는 눈치이다. 여자도 아슬아슬하게 속바지가 보이게끔 몽당치마로 엉덩이만 가리고, 웃옷 몇 겹을 덕지덕지 걸쳤어도 아랫배라든지 맨살이 저절로 드러난다. 허긴 제멋에 사는 세상이니.


봉그스름한 언덕을 이고 있던 우중충한 함석집이 헐렸다. 거기 간신히 통하는 한줄 고샅으로 장난감 같은 트럭이 바삐 드나들며 자재를 부린다. 뒤에 두어 달은 텁수룩한 사내 서넛이 뚝딱이거나 쪼물딱대다가 양지녘에 쪼그리고 앉아 탁배기도 나눠 마시며 욕지기 끝에 낄낄 실없는 웃음을 날리기도 한다. 기둥이 서고 벽이 가름하다가 삐져나온 서까래에 어느 날 지붕이 얹혀 비로소 집 형태가 되었다. 차암 이상하다. 겨우 집 한 채 들어섰을 뿐인데 주변 경관이 바뀐다.
드디어 볕이 따끈한 봄날에 중년 부부가 입주했다. 말간 표정으로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고분고분한 부부. 그렇지만 격이 다른 집이 못마땅하다. 마을사람들이 딴청부리며 콧방귀를 뀐다.
집만 덩그렇게 만들어 놓음 되능감.
배타적이고 질시어린 눈길에 아랑곳없이 사내는 묵묵히 화단을 일구었다. 이백여 평을 꼼꼼하게 더듬은 손길을 미처 거두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파릇한 싹이 돋았다. 놀라운 것은 자고나면 꽃이 피어났다. 예전 중국에 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 활화선이라고까지 불렸다고 한다. 사연인즉, 엇비스듬히 나무가지를 쳐 땅에 꽂으면 금방 싹이 트고 잎이 났다나. 꽃가지를 자르면 그 면이 매끈하여 원가지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생기가 돋았다. 심지어는 다른 이가 자른 꽃가지보다 열흘은 더 생생하게 꽃이 견뎠다니. 필경은 살상 도구라는 검劍이 나뭇가지이든 꽃이든 활력을 더하는 도구로 바뀐다면 마땅히 칭송받을만하다. 그 활화선의 현신인지, 진중한 손길을 따라 집 주변으로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인근에 향기가 진동한다. 낯빛이 창백한 부인은 가끔 한쪽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남편 일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손길을 따라 꽃나무는 다소곳해지고 아내의 얼굴에 웃음기가 서렸다. 나뭇가지는 이곳저곳을 부풀려 꽃봉오리를 터뜨렸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별빛이 서늘하게 내릴 적까지 애쓴 다음이면 신기하게도 비가 내렸다. 혹시 비에 꽃씨라도 섞여 내리는 건 아닐까. 이제까지 볼 수 없던 더 많은 꽃이 물기를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났다. 현란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다들 넋을 잃었다. 화사한 꽃밭에 서면 저절로 평화로워졌다. 어느 사이엔가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불안감이라든지 표출해내지 못한 분노 등이 사그라들었다. 기화요초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피어 보는이로 하여금 차츰 들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소일거리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늘어진다. 열어둔 창으로 햇볕이 뼘을 늘렸다. 산들바람도 슬쩍 발을 디민다. 바람결에 졸린 매미소리가 이어졌다가 끊어지곤 했다.
유한한 삶을 어떤 걸로 채우면 좋을까. 그래서 시작한 꽃을 피우는 마술을 그칠 수 없다. 하늘하늘한 꽃을 찾아드는 벌과 나비들의 군무를 보는 일도 즐겁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바람이 휘둘리고 꽃잎이 지는 저녁, 아내가 눈을 감았다.
아아, 여자애가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재미있는 마술이라도 혼자 펼치기는 어렵다. 식은 마음에 꽃씨를 심고 물을 줄 수는 없는 일. 기억만으로 저리다면 차라리 덮어 두어야지.
늦은 끼니를 떼우고나자 차츰 저희끼리 흥이 난 남녀는 금방 침울함에서 헤어났다. 여자가 고개를 샐쭉거리며 무어라 말하자 남자가 식당에 들어설 때의 걍팍함을 지우고는 너그러움 가득한 웃음을 터뜨린다. 웃음 끝에 슬쩍 토를 달자 이번에는 여자애가 남자 가슴을 쥐어박는 시늉을 한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글귀인데, 사랑은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이래.
둘이 하나가 되는게 아니구?
깔깔거리다가는 티격태격하고. 그래도 둘이 가는 걸음은 혼자 걷는 것보다 좋다. 산야가 초록에 눌려 점차 멀어진다. 밖은 시시각각 변하지 못해 안달하고, 여기는 허접한 시간이 혼자 낡은 때를 입히는 곳. 그 경계선에 늘어뜨린 발이 우쭐댄다.













je n'pourrai jamais t'oublier * Paul Mau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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