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오후 연가

*garden 2013. 1. 8. 12:13




한밤중에만 슬쩍 내리는 눈. 매일 자고 일어나면 천지가 새하얗다. 기온이 영점 아래로 곤두박질쳐 내달리던 강물도 꽁꽁 묶었다. 예년보다 훨씬 일찍 한강이 얼었다며 뉴스에서는 호들갑을 떤다. 같은 위도상의 도시들 중 서울만 혹한에 들어 있다. 그러던 게 한 이틀 곁불 같은 햇살이 내리자 가끔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카랑카랑했다. 둔치가 너른 눈밭으로 변해 헤매기에 딱 좋다. 잠원이나 반포쪽은 의외로 강폭이 좁아 심심했다. 보폭을 좁게 떼다가 차츰 넓혔다. 얼어붙은 눈이 버석대며 걸음을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눈 내린 들판에서 떼는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떠올렸다. 이정표와 상관없이 걸음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강변에 아무도 없어 거리낄 게 없다. 어떤 대목은 얼어붙은 수면처럼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 노래가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허밍으로 떼우며 아득바득 마칠 때쯤에는 제법 목청이 트여 다음 노래를 궁리했다. 매운 바람이 눈을 찌른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 지나는 누군가 보았다면 상심한 이로 여겨 혀를 찼을지도 모를 일. 얼얼한 추위에 턱관절도 딱딱해진다. 숨 죽여 얼음장 아래를 지나는 강물처럼 한 계절을 보낸 다음 봄날 같은 노래를 장만해와 다시 불러야지. 비스듬한 햇살 건너 강심에 점점이 떠있는 청둥오리가 얼음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David London, Blueprints Of The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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