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망무제로 트인 언덕에 올랐다. 사흘 밤낮을 찌푸린 하늘은 낯을 펴지 않았다. 바람이 들끓어 몸을 가눌 수 없다. 다리가 휘청거려 위태위태했다. 그래도 가슴을 연다. 옷깃을 부풀리며 안기는 억센 바람을 한껏 받았다. 바람결을 잡고, 어느 순간 몸을 띄워야지. 날갯죽지로 균형을 맞추며 상승기류를 타고 높이 오를거야. 벼랑 아래를 걷는 이를 보라. 멀리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지만 사정없이 드나드는 물결과 횡행하는 바람을 조심하여 고르지 못한 길을 힘들게 걷는 품이 역력하다.
태생적으로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라 한다. 깎아지른 벼랑(厓)에 물(水)이 드나들듯 간단없이 흐르는 것이 생애(生涯)이니, 정신머리를 어찌 놓고 있을건가.
죽음은 삶의 시작인가 아니면 끝인가.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까지는 얼마나 걸리는걸까.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말이 있다. 눈먼 바다거북은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에 올라 숨을 쉰다. 윤회설을 든다면, 바다거북이 올라와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 등걸에 목이 낄 확률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라 한다. 그러고보면 몇겁이 지나도 우리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음(中陰)의 시간 동안 우리가 조심스레 걸음을 떼는 것은 생전의 궤적을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새해에는 부디 그대 걸음도 온전하여, 너와 내가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Phil Coulter, Whispering H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