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그렇게 한 백년 지난 다음

*garden 2013. 1. 18. 06:32




예전 사랑채처럼 말꾼들이 모이는 자리. 얼굴을 모르는 채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상대가 나이 들거나 어려도, 여자여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어색하지만 근사한 일이다. PC통신이 성행하던 시절, 접속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쪽지로 부르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로서는 버거운 게, 감각적이고 상큼한 언어 들을 줄줄 늘어놓거나 일상적 이야기를 맛깔스레 버무려 조잘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쏠리게 하기 일쑤인데, 어떤 날은 심각하다.
"참, 사막에 가보셨어요?"
"그 언저리에만 서보았고만. 모래벌 널린 사막다운 사막은 못보았어요."
"저야말로 가끔 사막 한가운데 구슬처럼 그냥 내팽개쳐지고 싶어요."
초롱한 눈이 허공을 향하겠지. 지평선으로 가라앉는 농구공 만한 해를 그리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겨워 물정을 모르는 걸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방금 읽고 난 다음인지도 몰라. 이런 때 남자들은 대개 말을 더듬거리며 딱딱해진다.
"어, 꿈결 같은 삭막함이라도 한 이십분이면 질려 버릴 걸요."

호스로 물을 뿌렸는지 엉망이다. 바닥이 질척거려 건너뛰기도 하고, 늘어진 잎사귀에서 후두둑 물방울이 떨어져 황급히 카메라를 감싸안기도 한다. 열풍기를 가동하는지, 후덥지근한 바람에 기도가 칼칼해져 애써 침을 삼키기도 했다. 동선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오르내리도록 꾸민 관람로를 따라가다가 한 곳에 멈추었다. 아아, 한겨울 식물원에서 웅크리고 머리를 맞댄 선인장 군락올 보고 불현듯 어릴 적을 떠올렸다.
한밤 내 방안에서도 자리끼가 꽝꽝 얼던 시절, 웃목에 선인장 화분을 옹기종기 모아 두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실내에서 장난에 열중하다가 가시에 찔린 적도 많다. 왠 선인장을 그렇게 모아 두었는지, 아름드리 암석주와 백묘 등에서부터 금호나 월계관, 용설란 등이 어우러져 있었다. 바깥쪽으로 띠를 두르고 거적을 덮어 두었지만 모르는 새 잔 가시가 맨살에 숨어 들어 찾아내기도 하고, 억센 가시에 긁힌 상처가 일주일쯤 아물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두레박으로 깊은 물을 퍼올리던 우물 옆에 펌프를 설치했다. 마중물을 부은 다음 허덕이며 물을 끌어 올리다가 조만간 이도 수도로 교체되었다. 차츰 식구가 늘었다. 아침 나절 북새통일 때에는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꽃밭 옆 널따란 바위에서 퍼드득대며 낯을 씻었는데, 허드렛물이야 으레껏 나무에 뿌렸다. 꽃밭 언저리 가지가 갈라진 앵두나무 옹이자리에 올라 타기도 했다. 그건 아마 내 몸집이 작아서이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살구나무나 앵두나무, 대추나무 등속은 비눗물 때문인지 시름시름 않아 결국 베어내 버렸다. 꽃밭 흙도 예전처럼 일구지 않아 단단해졌다. 벌레 등이 생긴다고, 비 오면 흙이 사태지며 지저분해져 결국 콘크리트로 덮어 버렸다.
가세가 기울어 집을 팔고 때 아니게 이사를 다녔다. 살림살이는 남루해지고 깨진 채로 떨거럭거리며 우리를 따라 다녔다. 버리고 바꿀 법도 했지만 어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인장 등의 화분도 마찬가지였다. 용설란은 벌린 팔을 결박당한 채 중간치 장독 만한 이 빠진 사기화분에 갇혀서도 용케 견뎠다. 여름 저녁 긴 꽂대를 쑤욱 뿜어올리던 금호는 예전처럼 꽃을 피우지 않았다. 바탕을 떠나 살 수 없는 이들을 한데 묶어 두고도 미처 신경을 쓸 수 없다. 차라리 사막 한가운데였더라면 나았을 걸.
sky라는 닉네임을 쓰던 여자아이는 갑자기 접속을 끊었다. 과연 사막으로 쫓아갔을까. 사막을 보긴 했을까. 모래산이 무너져 포말처럼 흘러내리는 둔덕에서 두팔을 벌려 딩굴며 깔깔거렸을까. 버석대는 바람을 느끼며, 컴퓨터에 시선을 박고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클릭한다. 사막 따위나 꿈꾸다니. 애초부터 나는 사막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변형된 내 몸을 봐라. 두팔이나 다리, 심지어는 구부린 등에도 삐죽삐죽 돋아난 가시들로 빽빽한 게 보이지 않나. 식물원 한켠에 털썩 앉았다. 뾰족한 가시를 세워 의사표시를 하는 선인장을 우러러본다. 그 많은 선인장이 한꺼번에 사라진 게 이상했다. 행방이 궁금했지. 어느덧 내 입안에도 가시가 돋았다. 여기 모여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왔을 걸. 눈물겨워 이들을 꼬옥 껴안았다.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채로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Paul Mauriat, Je N'pourrai Jamais T'oub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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