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늘 끓는 세상

*garden 2013. 2. 15. 14:43




부동산에 목 매는 이가 많다.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라는 용어에 낯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다면, 당신은 소위 공직자 자격이 없다.
개발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고 잠잠하던 공덕로터리 주변. 용산발 개발설이 들썩이자 사실 여기부터 달라졌다. 소리 소문 없이 경의선 철로가 걷히고, 지하철 노선이 늘어나고, 하루가 멀다하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더니 대로변 스카이 라인도 순식간에 달라졌다.
길거리 사람들도 덩달아 바뀌었다. 대개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노년층이 오가던 시장 주변과 그 뒷거리까지 말끔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나타나 청량한 소리로 채운다. 그래도 한구석에선 세상을 살았다는 이들이 아쉬운듯 덧붙인다.
'거리가 예전보다 훤해. 인자 쟈들이 세상을 배워가야 할텐데.'
우뚝한 빌딩 안에서 점심 시간이나 출퇴근 즈음이면 물밀듯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일이나 다른 이의 삶이 보이면 가소롭다지만 과연 그럴까. 나날이 살이가 힘들어 팍팍해진 사람들은 나름대로 바닥에서 살 길을 찾았다.
저번 가을 막바지 무렵부터 말린 나물 대여섯 가지를 봉지에 담아 길바닥에 늘어놓고 팔던 아주머니. 매서운 추위로 점철된 겨울을 건너오며 코다리 등의 건어물로 가짓수도 늘렸다. 참, 사람 키보다 작은 합판을 직사각형으로 덧대 아구리를 맞춰 붙이고, 한면을 비닐로 봉한 무허가 바람막이도 세워 명실공히 종일을 버티기 좋아졌다. 한댓바람이 설쳐 맹맹한 길거리를 총총걸음하여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횡단보도 앞 점빵을, 어둑할 무렵 두어 잔 술로 불콰해진 노인네가 오지랍 넓게도 기웃거리며 말을 튼다.
'거 추분데 자알 버티요잉. 아줌씨를 보니 나가 뭔가 하나 안사 줄 수 없고만.'

한이틀 겨울이 사라졌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어도 바로 뛰쳐나가지 못한다. 안개가 사방을 가린 아침. 뿌연 장막 안에서 금방이라도 다른 차가 뛰쳐나올 것만 같다. 가속기에 발을 올려 둔 채여서 차가 늑대처럼 으르릉댄다. 오늘도 날이 풀릴 거라는 예고이지 않을까. 어제 점심 후 횡단보도를 건너오다가 빈 바람막이를 보았다. 늘 길거리에 늘어놓던 물건은 손바닥 만한 스티로폼 박스 안에 들었는지, 바람막이 안에 그냥 포개져 있다. 팔면 바로 돈이 되는 귀한 물건을 넣어 둔 스티로폼 박스 위를 신문지로 덮고 어른 주먹 만한 돌멩이 하나를 터억 올려두어 아무도 넘볼 수 없게 만들었다. 무언의 자물통에 빙그레 웃음짓다가는 갸웃했다. 겨울을 잘견딘 아주머니가 왠일일까. 대신 훨씬 나이 든 할머니가 옆에 밥공기 두어 개를 늘어놓고는 마늘을 깐다. 곧은손으로 껍질을 벗긴 하얀 마늘이 공기에 쌓여 종종거리는 햇빛에 보석처럼 반짝였다. 모름지기 세상살이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땅바닥에서 자글자글 끓고 있다.

















Giovanni Marradi, Elvira Mad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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