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데자뷰

*garden 2013. 2. 26. 17:17




선한 눈매의 십이층 단발머리 아주머니. 어떤 때는 이틀에 한번 꼴로 마주친다. 고등학교 수학 참고서를 손에 쥐고 있기도 해 막연히 하는 일을 짐작하게 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서부터 앞장세웠는데 뾰족구두 소리가 요란하다. 은색 승용차로 총총 가 뒷문부터 열고 신발을 갈아신은 다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일이분 정도 기다리다가 휑하니 달려나가겠지. 지금은 안으로 용을 쓰는 계절. 잎눈이 탱탱한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 네거리 쯤에서 만나는 아가씨. 어제 미용실을 다녀왔는지, 낯선 퍼머 머리가 우습다. 더구나 오늘은 밝은 정장 차림인 것을 보니 특별한 약속이 잡혀 있는 걸까. 상가 옆 화단 앞에서 시시덕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둘을 태우고 가려고 잠시 후 흰색 봉고가 나타날 테고, 백팩을 메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 장년의 저 신사는 길거리에 가래침을 함부로 뱉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역에서 오전 일곱시 사십오분발 열차 두 번째 칸 뒤쪽으로 들어서면 조그만 얼굴에 비해 큰 뿔테 안경을 쓰고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처녀와 마스크를 쓴 채 졸고 있는 아저씨 등도 늘 보게 된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길거리에서 보는 몇몇 얼굴도 아는 이는 아니어도 인제 낯익어 지나치며 무언 중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이 똑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서둘러 아침을 먹은 다음 회사로 출근하는 등 별반 다르지 않는 습관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근 몇십 년 동안 변함없는 생활을 해 왔으니 그 동안 익숙한 것들이 이뿐일까. 선택하고 익숙해진 많은 습관에 젖은 우리. 그게 최선이라고 믿어 가끔 아이들마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몰기도 한다. 휴일 아침 아이가 게으름을 피우자 눈치를 보며 꾸짖는 아내. 괜히 나를 들먹이며 쫓는데, 제 아빠라면 어림 없겠지만 금방 정색하며 따지고 달려든다. 언제부터인가 견고하게 쌓아둔 내 세상이 금 가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식물원에나 가볼까 싶어 일어나는데 식구들은 질색한다. 뒤란에 나서듯 뻔한 식물원에 왜 또 가느냐는데. 나야말로 그런 반응이 의아하다. 새로운 것이야 없지만 계절에 따라 다르게 견디는 꽃이나 나무가 가득하지 않은가. 거기에 삼백년이나 해온 듯 나름대로 혼자 생각에 젖어 들 수도 있는 익숙한 걸음이 왜 싫은가. 인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성장한다는 진리를 말해 줘야만 할까.
둘러본 다음 맛있는 것 사 줄게.
에게, 식물원을 나와 그 보리밥 집에 가실 것이잖아요.
습관을 만들고 익숙해지면 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한때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이 싫어 걸핏 뛰쳐나가기도 했는데, 인제 낯선 게 싫어 틀을 만들고는 들어앉아 아예 바깥을 내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Sol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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