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봄 머리에

*garden 2013. 3. 12. 11:48




꽃샘추위나 황사 때문만은 아니야. 열이 뻗쳐 코 안 실핏줄이 몇날 며칠 터졌다. 메마른 건기여서 더욱 그런가. 해도 죽을 병은 아니어서 맹맹한 채로 지나치기로 했다. 날이 풀리자 괜찮아졌지만, 콧물 등의 감기 증상도 없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맙소사!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게 되었다. 전기밥솥이 고장나 밥 타는 냄새가 집 안에 진동하는 데도 나만 어리둥절하고 있을 정도로. 베란다 화분에서 한겨울을 악착같이 버틴 브론펠시아가 보라색 꽃을 송이송이 내뿜었지만 그윽한 향기를 짐작만 할 뿐이었다. 표 나지 않게 몸의 기능 하나를 잃고서는 서툰 몸짓이 온통 거기서 연유되는 듯 기우뚱거린다. 밖에 나서려고 해도 껴입어야 하는지, 간편하게 나서야 하는지 도통 가늠할 수 없다. 설마 이러다가 이십대의 우울함이 찾아드는 건 아닌지. 머리를 흔든다.
휴일을 맞아 떠들썩한 산길을 몽유병 환자처럼 떠돌았다. 햇살도 어제와 완연히 다르다. 남녘 꽃 소식을 들었다. 아직 감감해도 무표정하게 버틴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불끈 치솟아오른 바위를 올려다 본다. 겨우내 허기진 바위꾼들이 조만간 주렁주렁 매달릴 것이다. 북한산 염초봉 바윗길은 여기 시발암(始發岩)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람이 파도처럼 우르릉대며 몰려다녔다. 진작 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죽은자를 기리는 건 산자의 도리. 이태 전 운명을 달리한 동료의 유골이 뿌려진 곳이어서 숙연해졌다. 고수레를 하고는 막걸리와 떡을 먹었다. 눈앞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다니는 박새를 보았다. 넋이라도 깃든 매개체일지도 몰라. 일부러 먹던 떡 조각을 떼서 주었는데 쫓아오다가는 두고 간다. 맛도 모른 채 먹은 다음에야 떡이 계피떡이라는 것을 알았다. 칼칼함이 지워져 어느 때보다 순한 기색을 보이는 개연폭포. 여린 물소리가 또 다른 날을 알리는 듯하다.













Richard Abel, Barcarolle Des Co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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