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사랑한 다음 순간

*garden 2013. 4. 9. 10:34




이제 겨울은 흔적 없다. 그럼, 과연 봄인가.
사무실에 빈 자리가 많이 생겼다. 지난 해 이맘때 쯤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청첩장을 책상머리에 갖다 놓는 직원이 꽤 있었다. 두세 사람이 그럴 적만 해도 입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근사한 계절에 뜻깊은 행사로 웃을 수 있어 기쁩니다. 헌데 이리 먼 데서 해요? 기꺼이 가야겠지만.'
공휴일은 으레 반납했다고 치부하고 지낸다. 본사 직원만 해도 삼사백 명이 넘어, 주말이나 휴일 아니어도 갖가지 일로 매인 적이 비일비재하다. 업무 때문이라면 당연지사여서 억지 비명이라도 내지른다지만 이건 드러낼 수도 없어 속을 끓인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인 일은 숫제 알리지도 못할 뿐더러 혼자만의 시간을 고집하여 무언가 설정하고 도모하기 힘들다. 어중간하게 일과가 어그러져 휴일이 난처한 적이 많다. 그래도 별 수 없다는 심정이었는데, 봄날 청첩 소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명 노처녀로 버티던 이들까지 귀밑을 붉힌 채 경쟁하듯 쫓아왔다. 두어 달 새 내리 대여섯 번이나 인사를 시킨다고 오르내리락하는 것도 민망스럽다.
'그 팀은 아예 처녀 씨를 말릴 판국인가 봐요.'

말로는 백 번이라도 축하할 일이지만 나중이 염려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바뀌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배가 불러왔다. 자연히 찾아오는 이들마다 입을 딱 벌린다. 개중에는 '차암 재주도 좋다'며 빙글빙글 돌려서는 내게 농지거리를 늘어놓는데 맞장구를 치자니 속 보이고, 그렇다고 대꾸를 안하자니 거북살스럽다. 자리에 따라 사람이 잘되고 화색이 돌기도 하는 데가 있다면서, 내 주변이야말로 좋은 자리가 틀림없다는데 과연 그럴까.
출산이 대세이고, 애국이니 무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마냥 좋아할 수 있어야지. 아기를 갖기 전이나 후의 배려는 물론이고, 출산때마다 대체인력을 구해 업무에 차질 없게 해야 할 뿐더러 개인 형편에 따라 예고 없이 덜컥 관두는 이들까지 속출한다. 양육에 따른 정책을 탓하기 전에 백약이 소용 없다.
출판사라면 으레 소심한 남자들의 집합소 쯤으로 떠올리지 않는가. 종일 안경을 추키며 터벅머리를 괴고는, 재털이에 줄담배 꽁초를 수북히 쌓아 놓을 정도로 열중하다가 밤 늦어서야 겨우 떨고 일어나 선술집에서 떠들던 것도 옛말이다. 나처럼 이 방면에 남아 있는 이는 손꼽을 정도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감각 있고 순발력 좋으며 수완을 발휘하는 우먼파워에 밀려 남자들은 힘을 못쓰게 되었으니, 세상사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지경이다.

초당에서 할머니나 이모는 시간 있을 때마다 길쌈을 일삼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베나 모시 등으로 식구들 의복을 만들었는데, 할머니나 이모를 비롯하여 동네 아낙들은 길쌈질을 잘하려고 경쟁적으로 매달렸다.
편집은 그야말로 실로 천을 짜듯 글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책으로 내는 일을 가리킨다. 그러자면 재료를 장만하는 일, 이를 건사하고 조합하는 일 등을 소홀할 수 없다. 또한, 목적에 따라 내용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나는, 사진이나 그림도 중요하지만, 말의 뼈를 세우고 살을 붙여 피를 통하게 하는 글을 대단히 중시한다. 우리는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기록한 다음 이를 확인하는 과정, 즉 책이나 사료, 신문 등 활자화된 내용을 보고서야 수긍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말과 글을 모으고 분류하여 바르게 읽히도록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허나 말은 소통하기보다는 잠자기 일쑤이며, 글은 뜻을 세워 공감을 이끌기보다 패류를 지어 상대를 공격하고 선동하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 어느 누군가는 한탄한다. 오프라인은 사그라지고 온라인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감성이 돋보이고 이성은 고루하다. 햇빛 한줌 뿐인 등사실에서 용지에 철필로 긁어 밀던 프린트 시절이나 암실 붉은 등 아래서 하이포액 냄새에 찡그리며 사진을 인화하던 일, 글자가 옆으로 누운 활판인쇄의 문선공 실수를 탓하는 일은 아득한 시대의 낭만이다. 청타, 식자 조판수들과 입씨름하며 낯 붉히던 그때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종일 글자와 씨름하면 꿈에까지 따라와 뒤엉켰다. 이를 바로잡아 손수 또박또박 옮겨쓰는 이는 이제 없다. 글이나 말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는 건 아닌가.
마음 곳간에 쟁여둔 아픔을 끄집어 내 햇빛마당에 깔아두는 듯한 첼로음이 그리운 날이다. 말을 짓고 글을 따지며 나를 세우는 일이 봄 오는 것처럼 당연스러워야 하는데.














Nathalie Manser, Loving 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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