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겨울 선자령

*garden 2013. 2. 5. 10:46










새벽녘까지 책을 펴들고 있다. 머리부터 덮어쓰고 있던 두꺼운 무명이불을 걷고 목운동을 하며 가슴을 쓰다듬었다. 나른한 건 중압감 탓이다. 해체 전의 소련 정치체제에 대한 거부와 비인간성을 폭로한 솔제니친의 단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사 들고 왔다. 바로 읽지 않고 내쳐둔다. 저녁 내 거실도 치우고, 어머니를 도와 걸레질도 하고, 현관 신발장도 정리하고, 나중에는 책꽂이 책도 가지런히 했다. 밤이 이슥해서야 곁눈질로 보던 책을 집어든다. 손안에 든 문고판 문장을 한줄한줄 씹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겨울은 그렇게 견디면서 지나야 한다.
오또기 같은 인형을 돌려서 열면 안에 또 하나의 인형이 나오고, 그 인형을 또 열면 더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온다. 나중에는 손톱 만한 인형까지 열 개가 넘게 나오기도 하는 러시아의 전통 목각인형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라는 마트료시카를 새기는 진중한 손동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이 일년의 반인 땅에서 자기를 잊으려면 또 어떤 것에 몰두해야 할까. 호두까기인형과 힘을 합해 밤새도록 적을 물리쳐도 꿈이 끝나지 않는 겨울은 어쩌면 낭만적이다.
지금 나의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송곳 같은 바람은 살을 찌르고, 냉기는 면돗날처럼 살을 저민다. 마트료시카 인형을 갖고 노는 것처럼 겨울 속 겨울을 만나는 기분으로 걷는다. 눈에 덮여 가물거리는 길. 그래서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 갈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얼얼한 바람 너머 앞을 가늠해야 했다. 파도처럼 일렁이며 그치지 않는 바람. 산맥을 타고 온 북극 거인 때문인가. 차가운 왼발로 동해바다를 더욱 푸르게 하고, 오른발로는 반도의 심장을 얼리는 듯하다. 방한복으로 칭칭 동여매고도 추위를 감당할 수 없다. 언 땅을 밟고 선 하체와 손발이 시려워 걸음을 서둘렀다. 뺨이 얼어 빨갛지 않을까. 속눈썹에 닿은 입김이 얼어 눈을 깜박일 때마다 빳빳한 느낌이 난다. 그저께 이곳 영에서 조난당한 노부부의 운명을 뉴스에서 들었다. 출발 일정을 잡아 놓고서 머뭇거린 일행도 있다. 이렇게 사나운 겨울날에 꼭 거기 가야만 하느냐는데. 차를 운행하겠다는 이가 그러는 바람에 화가 났다. 죽음이 꺼림칙하겠지만 피하려 든다고 비켜갈 수 있을까. 바람묏재 등에서 그렇게 한날한시에 운명을 함께한 부부는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삶과 길은 어떤 것인가. 걸으면서 내내 견디며 사는 방법에 골몰했다. 혼잣말하며 대답하기를 되풀이했다. 그리운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조바심도 난다. 하지만 소용 없는 것. 지금 나에겐 얼음 땅 위 한걸음이 소중할 뿐. 세상으로 다가가려는지, 아니면 벗어나려는지 알 수 없는 걸음을 조금씩 빨리 했다. 몸이 떠오르도록.
때아닌 겨울 장대비가 응달 눈을 지웠다. 지운 눈의 흔적이 아쉬운 듯 금새 폭설이 세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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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wish, Walking in The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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