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지난 기억의 새로움

*garden 2013. 8. 27. 10:18




화단에 꼬물거리는 개미들을 본다. 열을 지어 나무를 오르내리거나 부산하게 흙을 헤집으며 옮겨다니는 모습이 난리통 피난민 행렬이 따로 없다. 큰비가 예보되어 있다. 끈적거리는 여름, 그나마 더위라도 지울까 싶어 사람들은 안도한다. 기상예보를 들었을 리야 없겠지만 감각적으로 알아차리는 이 사회적 성향의 미물은 선입견이지만 오늘 유난히 바쁘다.
딴은 나도 개미과이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잔다. 잠자는 시간보다 깨어 있는 때가 많고, 빨리 멀리 가고, 한꺼번에 두세 가지씩 일을 처리하고, 늘 긴장하여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표정에 기복을 나타내지 않으려다 보니 어느덧 웃지 못한다. 얼굴 근육이 경직된 건 아닐까. 이러다가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처럼 재미없는 사람쯤으로 간주될지도 몰라. 막연히 떠올리는 미래는 '나중에'라는 한마디로 덮은 채 질주본능으로 지나온 날들. 사무실 말 많은 이가 줄곧 뇌까리는 '스트레스'를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길 정도였는데, 이즈음 부쩍 윤기를 잃어가는 매미소리처럼 비로소 세월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천 년 긴 농경생활을 단숨에 무너뜨릴 만큼 빠르게 바꿔온 산업화에 편승하여 온 탓일까. 눈만 뜨면 쫓아다녀야 해서 숨이 목에 차있다. 부수고 새로 만든 것들에 둘러싸여 어리둥절하다. 조만간 내가 아닌 나를 봐야 하는 일도 있을거야. 흐린 저녁이면 하릴없이 뜨락을 서성거렸다. 아련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끄집어 내지 못해 끙끙거렸다. 흥에 겨운 도깨비로 떠돌던 지난 날은 이제 찾을 수 없는가. 사람들과 섞이거나 닮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던 날, 한편으로 마음벌판을 휘젓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함께이기를 바라는 것은 기질이어서 어쩔 수 없다 해도 많은 게 달라졌다. 지난 얘기에 귀 기울이는 이도 없다. 제 방에서 나오려던 아이들이 숨을 가다듬는 기색이다. 정형화되어 있어 반듯하기만을 설파하는 내가 부담스러운 듯하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도 지친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공허해지는 것은 왜 그런가. 어느 때보다 '좋은 세상'이라는 걸 알지만 세상은 정녕 좋지 않다.

휴일에 약속이 생겨 차를 두고 나갔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땡볕이 사정없이 쪼았다. 마침내 버스가 온다. 성냥곽 만한 버스가 커져 사람들 앞에 멈췄을 때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버스기사더러 늦게 왔다고 호통을 쳐댔다. 작달막한 체구의 버스기사도 지지 않고 벌컥 맞상대를 한다. 아무도 화를 삭이려고 하지 않았다. 전화로 수다를 떨던 아주머니가 아니꼬운 듯 눈을 흘기며 따발총을 쏘듯 목소리를 높였다. 가로수 아래 떨어진 매미 주검에 달려들던 개미떼의 바글거림은 차라리 숭고했다. 지난 봄 식구를 늘린 까마귀가 새끼들을 데리고 공중에서 비행연습을 하는 게 보인다.
뙤약볕을 자양분처럼 받으며 저벅저벅 걸었다. 덜컥대는 버스에서 내려 갈아타지 않고, 서너 블록 정도를 걸어가면서 마음 한곳이 탈색되는 것을 느낀다. 뭉친 그림자가 아래서 부지런히 아장거린다. 양산을 접고 길가 그늘에 주저앉아 있던 할머니들 눈길이 무심코 나를 따라온다. 눈부신 여름 안에서 늠름한 내가 이상한지. 디지털 신호에 맞춰 조각되던 몸속 신호들이 해체되는 소리를 들었다.














Paul Mauriat, Le Ruisseau De Mon Enf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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