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존재, 그 기쁨

*garden 2013. 9. 10. 14:01




바구니에 담긴 까만 눈의 강아지. 한뼘 툇마루 양지바른 자리에서 눈 부비다 말고 하품 하는 어린 고양이가 나를 본다. 여린 햇살 같은 온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강아지 같은, 어린 고양이 닮은 아이가 아장아장 걷는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떠있다. 초가을 냄새가 싱그러워 눈을 감고 코를 킁킁거렸다. 아이가 벋은 손을 잡았다. 방금 켜낸 솜 같은 세상으로 상큼 내딛은 발. 몸이 둥둥 떠오른다. 꽃 닮은 미소를 뿌리며 세상을 날기 시작했다.
아이가 소리내며 웃다가 찡그렸다.
'아퍼, 아퍼!.'
걸음마 중에 주저앉은 아이. 무얼 잘 못 밟았을까. 한쪽 발 여린 살에 상처가 생겼다. 새빨간 피가 이슬처럼 맺힌다. 그때의 기억으로 불편한 기미가 있을 적마다 '아프다'고 표현하는 아이.
고깔과자에 소프트 아이스 크림을 듬뿍 담아 쥐어주자 금새 환해진다. 입 주변에 달콤한 크림을 묻히며 까닥거리던 몸짓에 기우뚱 떨어져 버린 아이스 크림. 쟁반에 굴려 둔 아이스 크림 뭉치가 아깝다. 멋모르고 달려드는 걸 제 엄마가 말린다.
'에비, 이건 코~해서 안돼!'
아이가 이해하는 단순하고 명징한 세상에 웃음이 난다.

이렇게 저절로 기쁨이 고이게 하는 것이 몇이 있던가. 잘 맞는 신발, 오래된 술과 친구, 앙증맞은 풀꽃과 나무들.....
아랫지방에 내려가다 만나는 방죽 위 우뚝한 플라타너스도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풍성한 자태를 스쳐 지나면서 차창을 내렸다. 이 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저 높다란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쓰다듬은 손길이지 않을까. 허공에 새긴 색종이처럼 반짝이는 잎이 새삼스럽다. 아름드리 나무인가 했는데, 살펴보니 너댓 그루가 한데 어울려 있다. 그게 한 몸처럼 어우러져 푯대처럼 솟은 게 망망대해에서 만난 섬처럼 반갑기 그지 없다. 한겨울 삭풍에 맨몸으로 버티는 걸 보면 애처럽다가도 눈밭에 파묻힌 모습은 푸근하고, 봄날 여린 싹으로 치장하고 기쁨에 겨운 춤사위를 보이는가 하면, 어느덧 초록 숲으로 만상을 품은 것처럼 그윽한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나서 살아가는 존재들, 애환 없이 버티는 생이 있을까. 오늘은 기쁘기 한량 없다가도 내일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비통한 때를 맞기도 한다. 허나 어떤 때이든 나무를 우러러 보는 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묵묵함이 부러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사랑을 하고 오늘은 이별을 했다. 어제는 태어나고 오늘은 죽을 수도 있다. 걷다가 멈출 수도 있으며, 읽다가 만 책을 다시 떠들어 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래되어 잊혀지더라도 삭일 수 있는 든든함만이 견딜 것이다.












Stefan Pintev, Ein Kinder Tr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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