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그대에게도 봄을

*garden 2014. 3. 4. 09:37




어깨에 봄 햇살을 두르고 짐자전거 페달을 밟는 저 여자. 가끔 보던 우중충한 분위기가 아니다. 찌푸린 미간이 펴져 감은 것처럼 보이던 눈이 비로소 커졌다. 내 옆을 지날 때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쪽을 지듯 늘 고수하는 머리 형태, 꽁무니를 묶었어도 곱슬머리 몇 가닥이 헝클어져 날린다.
아직 이른 아침 기온은 차갑다. 냉기는 딱딱함으로 이어지고 딱딱함은 단절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보도블록 위를 걷는 내내 연전에 부러졌던 발목이 시큰거렸다. 이물질에 닿은듯 덜컥거리는 뒷굽을 갈아야겠지. 내려다보니 맞닿은 바지 뒷단도 튿어져 올이 삐져나와 있다.
신문을 펴들어도 거슬리는 기사뿐. 글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놓고 일어섰다. 사무실을 나가 들른 만리재옛길 옹벽 아래 웅크린 세탁소 안도 춥다. 종일 햇빛이 들지 않는 이곳은 콘크리트 거친 벽을 그대로 두어 서늘함이 가감없이 느껴진다. 눈에 들어오는 공간마다 얼기설기 걸어둔 옷걸이와 옷이 시야를 가려 외려 거추장스럽다.
'여긴 추워요.'
'그래도 이제 겨울이 끝났어요.'
'늘 일이 많은가 봅니다.'
'보통 열두 시 넘어까지 해요.'
'볼일이 있을 땐 어떡합니까?'
'저는 바깥에 안나갑니다. 말도 잘 못해서 이렇게 세탁소 안에서만 하게 되구요.'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쉴새없는 여자 손. 지난 겨울 밤 사 들고 가던 대게 발처럼 딱딱한 손가락이 접힌 바짓단을 펴 노루발 안에 집어 넣고는 자근자근 재봉틀을 밟는다. 흐릿한 형광등 불빛이 강둥대는 흰 머리카락 위에 얹힌다. 아이가 뛰노는 것처럼 재봉틀이 달달거렸다. 사무실이 가까워 세탁물을 들고 오는 회사 직원도 있어, 이런저런 사람의 근황을 꿰고 있다가 묻기도 한다. 이 여자보다 싹싹한 언니가 얼마 전까지 근방에서 식당을 하여 안면이 있다. 몸에 배인 부지런함으로 견디는 이들이다. 스스로가 약한 것을 안다. 그래서 피붙이를 끌어 모아 한데 사는 건 아닐까. 세상이 달라져도 자기 앞만 보고 걷는다. 세탁이나 수선도 주어진 일이어서 평생을 안고 왔다.
'어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나요? 정정하시더군요.'
'올해 여든 셋이세요.'
허리가 직각으로 굽은 채 거위처럼 종종대며 지나는 노인네를 보았다. 말도 분명하고 조그만 소리도 분간하며, 세탁소 안에서 세발 다리로 버틴 동그란 나무의자에 앉아 바느질로 씨름도 한다.
'아이가 몇입니까?'
저번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모 부장 얘기에서 그 자식교육 일화를 들었다며 중얼거리는 바람에 넌지시 되묻는다. 여자 아이 하나 뿐이라고 했다. 신학공부를 해서 이번에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한다며 비로소 고개를 드는데 씁쓸한 미소를 떠올린다. 말이 난 김에 하듯 천국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보니 언니네 식당에서도 성경 글귀를 본 적 있다. 예전 내가 알던 여자는 심심하면 성경을 영어 원문으로 필사한다던데. 종교에 대한 감성이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내가 대꾸할 수 없다. 바지를 갈아입는 동안 얼마를 줘야 할까 망설인다. 따뜻하게 다려 날 세운 바지를 입자 우쭐하다. 누구나 사는 일이 자기 위안이고 의지이지.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올 것이다.










Koen De Wolf, Rivers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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