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 살이에 행여 마가 낄까봐 안볼 것, 듣지 말 것, 마주치지 않을 것 등 금기를 정해 두고 생각나면 되뇌이는 어머니. 검(劍)의 달인이 미리 살기(殺氣)를 피해 가듯 삶이 온전하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 만만한가. 일기가 불손한 철, 주변도 하수상해 제반 일을 내쳐두었다. 면도를 하지 않듯 거칠거칠한 날이 이어진다. 그래도 세상은 제나름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뒤뜰 화단에서 나풀거리는 나비를 보았다. 설마 했지만 틀림없다. 동토뿐인데 우화하여 날갯짓이라니. 아직 꿀을 취할 마땅한 꽃도 없는데 말야. 자리에 앉아서도 날아가 버린 나비의 행방이 궁금했다. 나비가 꿀을 찾듯 눈앞 글 바루는 일에만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거실에 둔 난이 꽃을 피웠다. 거뭇한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신새벽에, 꽃대를 올리고 날아갈듯 자태를 보인 꽃을 보면서도 가라앉은 마음은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내 돌보기를 소홀하였더니 태반이 시들시들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바람에 묻어 온 괭이밥이 화분마다에 번식하다가 어느새 난 화분에까지 쫓아들어 번져 싹을 틔우고 시들기를 반복한다. 화분 바깥으로 너절하게 말라붙은 괭이밥 줄기를 걷어내다가 별 수 없이 속을 파내 보는데 이건 아니다. 실뿌리 뭉친 게 오죽해야지. 삶과 죽음이 엉키고 설킨 덩어리가 무참하여 속이 오글거릴 정도이다. 일일이 걷어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어서는 방치해 둘 수밖에 없다. 심정적으로야 애석하지만 어쩌나. 나중 강하게 살아남는 것만 건사하리라 작정하면서. 꽃이 사그라드는 기미도 건성으로 지나쳤다. 그게 못내 아쉬운가. 햇살 환한 아침, 눈앞을 어른거리는 날갯짓을 다시 본다. 빛이 뭉쳤다가 흔들리기도 한다.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 몇 마리를 새삼스레 보았다. 아기탯줄처럼 저번 꽃대가 흔적만으로 말려 있는 게 눈을 찌른다. 비로소 난을 베란다에 옮겨 놓고 창을 활짝 열었다. 아직은 바늘처럼 맨살을 콕콕 찌르지만 바람이 점차 부드러워져 살랑이기를 청해야지.
Secret Garden, Passaca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