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봄밤 적요

*garden 2014. 3. 27. 09:39




술이 올라 불콰하여 주택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긴 늘 선경이네요.'
'선경에서 해로하는 두 분이라, 부럽습니다....하하'
Y선배 생일쯤에는 연례행사로 집에 갔다. 선배가 화초나 나무 가꾸기에 일가견이 있어 옥상화단이 식물원이다. 특히 분재에 정성을 쏟아 경이로운 작품들이 늘어섰다. 거기에 비해 손님은 짓궂다. 혹여 해꼬지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기색을 무시하고 이죽거린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가져가야겠어.'
'어허, 행여 그런 소리일랑 말으, 그건 내거야.'
'내것'이라고 점 찍어둔 작품은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가져간다며 떼를 쓰곤 했는데, 사실은 어림없다. 헌데 어느 해인가 선배가 정색을 한다.
'왜 하필 그거야. 마음에 드는 다른 건 없나?'
'아하, 다른 걸 주시려나 본데, 저야 일편단심입니다.'
산구릉처럼 갈라진 암석 더미 사이 구부정하게 돋아 팔을 늘어뜨린 바위솔 분재를 슬쩍 건드린다. 기겁하는 눈치일랑 제쳐두고.
집을 나와 동행히던 이가 상기시킨다.
'왠일이야? 정말 다른 분재 하나쯤 건네줄 눈치더만.'
'설마, 하두 떼를 쓰니 달래느라 그런 거지.'
'아냐, 분명히 그럴 셈이었어.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지.'
'만약에 준다 해도 내가 말지. 왠 신줏단지 하나 모셔 두고 오매불망 정을 쏟을 일이 없어!'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이리저리 비틀려 살아야 하는 태생이 마땅치 않을 뿐더러 그걸 곁에 두어야 한다면 더욱 질색이다.

어느 순간 주인의 삿된 몸짓이 못마땅한지, 의무를 저버리고 '뚝' 부러져 버린 뼛조각을 지탱하느라 박아둔 핀이 고맙기는 커녕 거슬리기만 했다. 좀체 틈이 나야 말이지. 세상일 여기저기에 관여하다 보니 차일피일 시간만 끌었다. 이러다간 이물질을 몸 안에 둔 채 평생 가야 하는 지경도 떠올려 견딜 수 없다. 분재처럼 의지에 반하여 속 썩지 말아야지. 철심을 제거하자. 작정하고 달려가 침상에 누운 나를 점검하던 간호사가 고개를 흔든다.
'맥이 무척 느린데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잘 못 잰 건 아니구요?'
'원래 수술을 앞두면 긴장해서 빨라져야 정상인데.'
수술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 맡겨두면 알아서 할 것이고. 단지 성가시게 만드는 것마다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렇게 뼈를 발라낸 다음 온전한 나로 견디는 봄밤은 홀가분하면서도 뻐근하다. 통증이 몸안 세포를 하나하나 일깨운다. 그래도 살아있어 누리는 증거이니 감사히 받아야겠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흘러든 향기에 눈을 떴다. 푸르스름한 밤이 사방에 들이차 있다. 절개하였다가 꿰맨 다음 쳐들린 다리쪽 감각이 아뜩하다. 마취후유증으로 받혀지지 못하는 뻐근한 목 근육을 어떡할까. 밤안개가 한움큼씩 내려 덮인다. 먼 곳을 휘돌아온 바람이 서성인다. 어제와 여실히 다른 날이 되었다. 이런 밤에는 아리아가 제격인데. 벨칸토 창법으로 열창하는 가수 중 누가 있던가. 시린 바람을 안고 달려가 동해안 방파제에서 누가 노래를 불렀던가. 진중하게 우러난 목소리가 친구처럼 웅얼대는 파도소리를 일깨운 그 밤이 그립다. 페도라라도 쓰고서 어깨를 겯고 목청을 높여, 너도나도 용을 써 꽃눈을 부풀리는 봄을 노래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Giovanni Marradi, Paris 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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