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손전화를 열었다. 낯선 목소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여직원이라고 했다. 전화기 안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심스레 묻는다.
'골프 좋아하세요?'
'요즘엔 안칩니다만 왜 그러시죠?'
'그게 저, 아래층에서 골프를 치는 듯한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요.'
'그럴 리가요? 아마 잘못 들었을 겁니다.'
인터폰으로 신경질적으로 항의한다는 얘기를 몇 번 들은 적 있다.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분쟁이 잦다더니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건가. 어느 때 휴일에는 빈둥거리며 티브이를 시청하는데 인터폰이 울린다. 받자 마자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아주머니에게 얼결에 사과하고는 방금 일어난 일을 복기해 본다. 나야 쇼파에 반쯤 누워있었고, 그럼 아이가 제 방에서 발을 구르는가. 들여다 본 아이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다. 인터폰을 다시 들었다. 아래층을 연결하여 해명한다.
'지금 저희 집에서는 소리를 낼 만한 거리가 전혀 없습니다만.'
'그럼, 지금 울리는 이 소리는 대체 뭐에요?'
'울리는 소리라니요? 의심쩍으면 와 보고 말씀하시지요.'
운동을 하고 나왔다. 마침 앞을 지나던 차가 멈춘다. 누군가 운전석에서 인사를 하는데 낯설다.
'저, 바로 위층에 삽니다만.....'
'아, 그러세요?'
'집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요, 타세요.'
권유에 얼결에 올라탔다. 걸어갈까,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망설이던 참이다. 그나저나 나를 어떻게 알아봤을까. 며칠 전 퇴근해서 단지 안을 들어설 때 어둑한 길 건너편에서 큰소리로 인사하던데 바로 이 여자였구나. 동그란 눈에 단발머리,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한다.
'조카들이 아직 어려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많이 시끄럽지요?'
'네? 아, 네. 조카들이었군요.'
그러고보니 연전에 윗집이 이사 오면서부터의 소음이 떠올랐다. 특히 아이들이 뛰어 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유난했다. 주말이면 특히 심해 올라가 쫓을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랄 땐 당연히 그렇지요.'
'그래도....이 자리를 빌어 제가 사과 드릴게요.'
'아, 괜찮습니다.'
그게 채 한달 전이었을까. 그 다음부터 아이들은 밤 늦어도 더 거리낌없이 뛰어다니곤 했다.
그저께에는 자다말고 깼다. 어둠을 찢는 뾰족한 소리가 어지럽다. 자정 전까지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들었는데, 이 새벽녘에 왠 싸움질일까.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하던 여자를 떠올렸다. 지금 분을 참지 못하고 세상이 들썩이도록 사나운 소리를 쏟아내는 저 여자가 과연 그 여자일까.
온 식구가 한데 어울려 살던 어린 시절에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인정하고 서열에 따라 양보하거나 뒤따르던 예의심이 가득했다. 그게 주거 형태가 바뀌면서 성정도 변해 버렸는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성냥곽처럼 포개진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정작 상대를 배려하지 않게 된 우리. 땅에서 모여 살 때에는 차라리 괜찮았는데, 지금은 너나 없이 다를 바 없다는 평면적 사고로 바뀌어 맞부딪치면 시끄럽다. 여리지만 선병질적인 아래층 여자는 지금도 귀를 곤두세우고 있지 않을까. 신경 긁는 소리에 미간을 좁히면서. 거리낌 없이 할 말을 해대는 위층 여자와 언성을 높일 일이 생기면 어떡할까. 그저께에는 자기 주차구역에 우리 집에 온 손님이 차를 대놓았다며 빼달라고 연락을 하던데.
Blonker, Sidewalk Ca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