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석이 아재라니?'
어느 때 시골 친척들이 모두 성내에 들어온 다음 다니러 가지 못했다. 먼 친척이라지만 한 동네서 이어지던 때와 달라 오가지 않으면 남이다.
퇴근하자 말자 달려갔는데 아재는 벌써 집에 와 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지난 얘기가 늙수그레하니 주름잡힌 입에서 줄줄 쫓아나온다. 어느 때 논일을 하다 나온 아재 잠방이에 묻은 진흙덩이처럼. 차린 저녁을 대접하고, 술도 거나해져서 배웅하고 오니, 주방 한켠을 가리킨다.
'이게 뭐요?'
'아재가 들고 온 쌀이에요.'
누런 쌀자루 아구리를 열었다. 쌀알이 곱기도 하다. 맹맹하고 향긋한 쌀냄새를 맡았다. 쌀을 한주먹 쥐어 흩뜨린다.
허공 높이 마른 잎을 달고 있는 물오리나무를 짚고 두리번거린다. 우리는 어느 시냇가에 서 있었던가. 늘상 마음속에 흐르던 그 물길. '졸졸'대는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어떤 갈래를 타고 지금 이리 흘러 내렸을까. 궁금해하면서.... 집안 행사 아니면 생전 만날 수도 없다. 서울 저쪽 끝에 자리잡아 쌀가게를 열었다는데. 아는 얼굴이라며 떠올리고는 먼길을 이고지고 와서 인사치레를 한 아재에게 나중 쌀 한말이라도 팔아주기나 했던가.
Paul Mauriat, Le Ruisseau De Mon Enf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