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봄비 오는 밤

*garden 2016. 3. 4. 17:42




끼닛거리가 간당간당해도 아랑곳없는 아버지. 오늘은 손님과 더불어 오셨다. 양은주전자를 딸랑거리며 점빵으로 달려가는 것은 으례 내몫. 백열등이 흔들렸다. 담요에 아랫도리를 파묻은 점빵 강씨댁이 고갯짓으로 가리키는 바닥. 아구리만 삐져나온 독 뚜껑을 열자 시큼한 술 냄새가 어질어질하다. 숨을 멈추고는 한 됫박 펐다. 술이 떨어지면 쫓아가기를 서너 번. 이윽고 거나해진 당신들이 장단을 맞추며 노래도 한 곡조씩 뽑았다. 못마땅해 입이 뾰루퉁하던 어머니도 비로소 곁눈질로 훔쳐보며 웃었다.
늦은 밤, 인적 끊긴 골목길을 지나던 취객이 고래고래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부르며 간다. 흥 때문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 슬픔이나 애닯픔도 녹아 없어졌다. 창의적인 음향효과의 대부 김벌레는 풍으로 오랫동안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홀로 시신을 지켰다. 마침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밤새 들으며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새겼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예전 당신의 노랫가락이 그립다. 굳이 노래방에 가서 가사를 띄우지 않더라도 한잔 술을 옆에 두고 흥얼대며 가락을 새기고 싶지 않은가.












Paul Heinerman, Evions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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