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또 다른 곳에서

*garden 2015. 2. 6. 13:34




식구가 모였다. 때가 되어 상차림으로 모처럼 분주하다. 말간 얼굴과 환한 웃음, 자분거리는 걸음들이 평화롭다. 헌데 이 집 남자들은 어째 하나같이 집안일을 도울 줄 모를까. 식탁에서 반찬 그릇을 가지런히 놓는 손을 보다가 단아한 아이 옆모습을 보았다. 무시로 보는 익숙한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저마다 자기 일과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눈만 뜨면 쫓아나가기 바빠 식구인들 언제 얼굴을 마주할 틈이 있어야지. 그러다보니 속내를 드러낸 얘기를 나눈다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내게 다른 얼굴이 여럿이듯 지금 아이는 무채색 표정을 짓고 있다. 조금 전까지 친근하던 얼굴이 모르는 사람처럼 여겨져 다른 이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낯선 길에 자주 나선다. 의미 없이 맴돌기도 멋적어 찾아가려는 곳을 더듬다보면 길을 묻기가 참 애매하다. 붙잡은 이마다 모른다고 아예 회피하거나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답하기를 꺼려해서는 씁쓸한 세태를 보는 것만 같다. 스마트폰을 열면 간단하지만 사람들 말본새나 곁다리 다른 얘기라도 듣고 싶어서인데 그게 쉽지 않다. 억지로 커피점에 들어갔더니, 찾아가려는 곳을 제나름대로 검색해서 가는 교통편과 갈아타는 곳까지 스무 가지 길을 적어주는 여자 아이도 있다.
발등 피부 상처라도 처치할 겸 생전 가지 않는 병원도 들렀다. 예전에는 두고 지나쳐도 하루이틀이면 나을 상처를, 외과에 열흘간이나 다녔다. 의사가 항생제라며 내내 주사를 놓았는데, 상처 치유보다 맹맹하던 코가 트여서는 반경 십미터 안의 온갖 냄새를 샅샅이 훑을 정도가 되었다. 이 정도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나오는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 정도이지 않을까. 어떻거나 몸 상태가 쾌조에 달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을 지경이다. 자유는 비탈길을 구르는 돌을 아래서 위로 밀어 올려주듯 인간의 경향성에 저항하는 행위다. 늘 정한 바탕 안에서 익숙함에 젖어 헤어날 줄 몰랐는데 자유의지로 '가지 않은 길'에 덜컥 들어선 나를 본다.












George Davidson, Junto a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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