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순간 잠의 경계를 벗어났다. 만장처럼 주렁주렁 널려 있던 꿈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청각과 후각이 살아난다. 어디서 장작을 태우는지 스며드는 화근내.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지난 시간은 꺾인 관절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수북하고, 새 시간은 스러지는 새벽 미망 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티브이 볼륨을 높였다. 고음을 경기관총처럼 쏘는 여성 앵커의 말이 차츰 형체를 이루었다. 아직 어스름 속이어서인가. 밤새 떠올라 있던 사물들이 미처 제자리를 잡지 못해 엉거주춤하다. 뉴스는 명확한 듯해도 한 구절 한 구절을 뜯어보면 미씸쩍은 게 한둘이 아니다. 저간의 사정이 간략화되어 있어서인가. 아니면 단정하고 치우쳐 보도하는 습관 때문인가. 아침 신문에서 찾아낸 간밤 사건 몇 줄을 더듬다 말고 생각은 만리청천 밖을 떠돌았다. 따지면 따질수록 말이 늘어나야 했다. 말을 끊임없이 해도 도무지 말을 세울 수 없다. 놓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웃거리며 헤매는 버릇은 어떡할까. 아직 피가 더운 탓인가. 온몸 피돌기로 텁텁해진 기운이라도 지우려면 알싸한 눈밭에라도 나서야지. 맞바람을 이고 묵묵히 걷는 내내 풀어 헤뜨려진 기억의 말 한 자루. 지난 말들은 너저분할 뿐이다. 서운함이 묻어 지워지지 않고 질질 끌려다니는 말의 사슬이 거추장스러워 걸음을 바삐 뗐다.
George Winston, Variations on the Kanon by John Pachelb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