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시무간

*garden 2015. 1. 6. 09:23




발이 걸려 하마트면 넘어질 뻔했다. 가슴을 쓸며 발 아래를 살펴본다. 좁은 보도에 억지로 가로수까지 심어 두어 길이 반쯤 막혀 있다. 찻길로 내려서야 했는데, 나무도 온전하지 못하다. 갇힌 곳에서 윗둥치가 잘린 채로 안간힘을 써 뿌리를 벋었으나 답답하다. 힘줄처럼 돋은 뿌리가 인도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보도블록이 길게 일어나며 균열이 나있다.
정한 규칙에 따라 쓴 글을 다듬다가 문자가 척박한 환경에 놓여 있던 가로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 목적을 위해 쓰인 글은 요연함도 없고 일면 멋적다. 그래도 별 수 없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실리는 글이 중구난방 가지 치고 뿌리를 벋어서야 안되지. 글의 앞뒤를 따지고, 행여 잘못된 내용이 기술되거나 빠지거나 틀린 글자가 없게끔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호출이 있어 들어갔더니 대표이사가 뜬금없는 의견을 낸다. 의견이지만 넘어갈 수 없다. 주저하다가 한바탕 언쟁을 했다.
"그렇게 교정 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 상담실에서 교정을 보면 안됩니까?"
"교정.교열이야 전문으로 보는 사람에게 맡겨야지. 너나 없이 보게 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사람들이 잘못된 부분을 잘 찾아내지 않습니까?"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이들이야 독자 클레임을 받아 거기 따른 대응을 하는 거지. 교정을 보고, 오류를 샅샅이 잡아내는 것과 거리가 있습니다."
인쇄소에 넘어가기 전 상담실에 최종교정을 한번 더 맡기라는데, 이건 애시당초 말이 안된다. 박봉에 종일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무실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존감도 무시하고는 오류를 막겠다고 엉뚱한 데서 원고를 훑게 하라니 뭔 말인가. 빌미를 줄 수 없어 야박하게 거절했더니, 그 때문에 회사가 망해도 되느냐고 한다. 부서마다 고유의 업무가 있다. 편집은 편집쪽에서 처리하겠다며 차라리 인원을 늘려달라고 하자 콧방귀만 뀐다.
이게 어떻게 시작된 사달일까? 상담실 책임자인 Y탓이다.

상담실 Y는 일이 있거나 없거나 쪼르르 쫓아온다. 술도 사 달라기에 가끔 나앉기도 하는데, 회사 동료이니 굳이 이성으로 구분한다는 게 의미 없다. 상하관계로 따질 수야 없지만 업무상 깍듯하게 대한다. 교태스러운 음성과 몸짓이 유난한데, 그게 지나칠 정도여서 때로 받아들이기에 거북살스럽기도 하다. 헌데 내게 뿐만 아니라 관계되는 사람한테마다 그러는 모양이다. 회사 바깥에서 곧잘 불평이 들어와도 쉬이 풀어내는 걸 보면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다. 책 내용에 대한 오류 상담 등을 도맡아 처리하고 이를 전하느라 편집쪽 담당들과 개별 연락도 취한다. 대표이사에게도 별도 보고를 하는데 오류를 찾아낸 걸 마치 자기 공인양 떠드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건수가 의외로 부풀려지기도 하고, 이쪽과 심심찮게 언성을 높인다. 어느 때에는 일방적으로 내용을 고치라고 연락하는 모양인데, 담당자가 관점에 따라 다른 점을 내세워 설명을 덧붙여도 막무가내라고 했다. 보다 못해 그걸 지적하자 앵돌아져 대표이사실에 엉뚱한 말을 넣은 모양이다. 뻔한 사실을 면전에 대놓고 들먹일 수 없지만 그냥 둘 수도 없다. Y를 불렀다.
"대체 왜 그럽니까. 히스테리가 있나요.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억지 부립니까? 엉뚱한 데 기웃거리지 말고 할일이나 제대로 하세요."
사무실이 쩌렁쩌렁하다. 쫓는 사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쳤다. 대꾸도 없이 굳은 건 당황스러워서이다. 하던 대로 교태를 부리지 못하는 것도 캥기는 구석 때문이다. 어쩌면 쫓아가 혼난 사실까지 고하지 않을까. 그럴 여지가 충분한 여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게 대표이사실을 통해 엉뚱한 압력으로 돌아온 꼴이 되었다. 이건 도발이다. 앞서 벌인 행위 자체보다 나중 빚어지는 행태가 밉다. 개인적으로 뭔가 추구하더라도 그렇지. 영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 이런 일은 작정하기가 힘들지, 결정되면 실행해야 한다. 우선 벽을 세웠다. 오고갈 일이 없다. 간혹 사내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다. 모략을 하든 비방을 일삼든 개의치 않는다. 상담실에서 오는 건의나 사람을 막지 않되 이쪽 사람들이 거기 드나들지 않게 하였다. 대표이사실을 거쳐 오는 의견을 점검하여 처리하되 사사로운 감정을 담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제까짓게 날뛰어봐야 소용없다. 지나고서야 답답해진 기미이다. 일이 생기면 간혹 고압적인 자세로 엉뚱한 이를 쫓는 모양이다. 내게 전해지라는 몸부림이겠지만 철저히 무시한다. 담당으로 하여금 원칙을 고수하게끔 일러놓았으므로 일 처리는 그에 따를 것이다. 그게 십여년 전이다.

며칠 전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오는 도중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지나치는 여자를 보았다.
"방금 누구지?"
"상담실 Y잖아요."
"응? 많이 변했네."
"글쎄요, 나름대로 고민거리가 많은가 봐요. 스스로의 몸이 저리 되게 놔두는 걸 보면."
아아, 바람이 불어가듯 무심코 잊었다. 헌데 누군가는 바람을 거슬러 가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아무렇게나 내질러 일이 커진들 책임지거나 사과할 줄 모른다. 잘못이라는 것을 모르고 개인적으로 야속한 것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엉뚱한 일의 연속으로 모진 결정을 하기까지 번민을 거듭한 여러 밤이 떠오른다. 천국과 지옥이 있기나 한 걸까. 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 앞에서 내가 기다리면 된다. 그게 끝이다. 이후 Y는 스스로 내 눈에 띄지 않았다. 회사 사람이 몇백이나 되어도 숨어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비교적 출근시각이 이른 나보다 먼저 나와 있는 듯했다. 퇴근도 의식해서 피해 다니는 듯하다. 자기 사무실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회사의 온갖 클레임을 처리하는 동안 나에 대한 증오를 키우고 있었을까. 내가 바깥에서 담소하며 활개하는 동안 공개적으로 혼난 날의 그 시간을 결코 지우지 않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불화살처럼 무자비하게 날린 내 말을 곱씹는 동안 몸서리를 치며 창살을 세워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을까. 갇혀 움직이지 않고 수백 번 도돌이표를 찍어 되돌아가며 까무룩 잦아든 순간 세상은 암흑 속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녀 모습은 확실히 달라졌다. 목은 짧아지고, 어깨는 넓어졌으며, 살은 디룩디룩해져 예전의 밝고 화사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녀는 그야말로 숲에서 나온 마귀할멈처럼 이를 악물었는데 큰키는 온데간데 없이 어깨부터 가슴과 허리와 엉덩이를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머리카락은 부스스했으며 눈은 어느 곳을 향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새삼 마음 약해져 일말의 관심을 보이고 싶지도 않다. 메마르고 차가운 바람이 사방을 휘저었다. 겨울 한가운데서 코가 맹맹했다. 별안간 Y가 아닌 내가 측은해졌다.












Michele McLaughlin, Just Bec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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