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에서 제임스 본드가 모는 작고 날렵한 벤틀리. 서스펜션의 성능이 뛰어나서인지 바닥에 붙듯 잘 달리는데 굽은길에서 코너링도 좋다. 차가 작고 가벼우면 빨리 달릴 수 있겠지만 그만큼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육중하고 묵직한 중형이나 레저용 유틸리티 차량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아침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바람에 날아갈듯 가냘픈 이웃집 여자가 힘에 부쳐 끙끙댄다. 9인승이나 되는 SUV 차량을 이중주차해 놓았는데 이게 연약한 여자 힘으로 도무지 밀리지 않는다. 바닥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헌데 산돼지처럼 수염이 북실북실한 이 차 주인은 그렇게 주차해 놓는 게 습관이다. 누가 곤란하든 말든 상관치 않겠다는 심산이다.
움직일 때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차로 길을 나서게 되고, 도로는 미어터져 온종일 오도가도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마다 두세 번은 짬을 내 운동을 하려고 문화센터에 가는데, 얼른 다녀오려다 보니 차를 갖고 간다. 헌데 거기 주차장이 협소하다. 시간에 맞추느라 도로 구석진 곳에 차를 냉큼 대놓고 들어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입구나 지하에 이중주차도 예사로 해댄다. 그걸 보고 낯 찌푸리던 나도 어느덧 아무렇지 않게 이중주차를 해놓기도 한다. 단지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대는 이가 있으면 손가락질도 했는데, 이런 어긋난 걸 보고 참지 못하는 이도 있다. 민원이 잦아 어느 날 주차장 입구에 말뚝을 세우고, 주차장 안에도 이중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일일이 가로막을 세워두었다. 당연한 걸 당연히 지키지 않고 지났다. 불편한 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질서. 비로소 정상이 된 걸 보고 씁쓸하다. 주변이 흩뜨러지도록 상관 않고 사는 건 우리가 혼자인 게 너무 익숙해서이지 않을까.
Francis Goya, Goodbye Mosc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