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커피 속 설탕처럼 녹은 봄날

*garden 2015. 4. 13. 10:50




응봉산을 덮어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노란 개나리. 서울 성곽 주변을 두른 벚꽃 띠. 겨우내 떠돌던 바람에 시달리다 비로소 깨어난 아파트 구석의 하얀 목련 들. 꽃이 지천이다. 꽃과 이를 보는 이들이 즐거워서 다들 활짝 웃었다. 들뜬 마음으로 한나절을 꽃마당에서 서성였다.
다음 날,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구두가 엉망이다. 시간도 빡빡해 허겁지겁 달려가 만나는데, 상대가 내 흙투성이 구두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내내 신경이 쓰여 구두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눈은 상대를 향하지만 말이 겉돌아 나중에는 이도저도 제대로이지 못하고 엉망이 된 걸 후회한다. 어서 용건을 마치고 싶은 마음 뿐인데 얘기는 왜 이리 길어. 안달하기를 두어 시간. 겨우 마무리가 되어 엉거주춤 일어섰다. 뒷처리를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굳이 좌석에서 나를 끌어내는 상대가 야속하다. 난감하여 얼굴이 화끈거렸다. 바깥으로 나오자 햇빛이 눈부시다. 괜히 시선을 먼 곳에 주고 엉뚱한 말을 주절거렸다. 시내에 왠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너도나도 쫓아나와 와글거렸는데, 만난 이를 배웅하고 돌아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홀가분해지려나. 정수리를 꾹꾹 눌렀다. 마침 파란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 서너 블록이나 걸어가 구두 수선을 겸하는 곳을 찾았는데 안이 비어있다. 조금 전의 아찔한 기분으로 나설 수 없다. 거리 한켠 구두수선소에서 우두커니 오가는 이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짐 자전거를 끌고 온 구두닦이는 반백의 노인이다. 말 없이 구두를 벗어주자, 익숙하게 흙을 떨어내고 구두약을 칠한 다음 깔창을 빼내 구두 속 이물질을 떤다. 걸어다니는 동안 발바닥에 느껴지던 불편하고 애매한 감촉이 저것 때문이었구나. 소제할 엄두도 못내고 휘젓고 다닌 내가 이상할 지경이다. 지켜보는 눈초리에도 아랑곳없이 노인네는 가죽 매듭을 일일이 당겨 터진 곳이 없는지 살피고 뒷굽 바닥도 확인하고서는 침착하게 광을 냈다. 내 고단한 발을 감싸고 다닌 구두를 아무렇지 않게 껴안고 쓰다듬는 그가 새삼 성자처럼 우러러보인다












Stamatis Spanoudakis, To 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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