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물 길

*garden 2016. 6. 15. 01:56




평생 출근했으면 이제 습관 들어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 허덕거린다면 멀었다. 길마다 자동차로 넘쳐나 몸살이다. 오늘은 이리 뛰고 내일은 저 골목으로 빠지고, 어느 때는 차라리 멀리 돌기도 하는데 여측없다.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이면 이상하게 발목 잡는 게 왜 그리 많을까. '조바심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꼼짝 못하는 차 안에서 성벽을 백 리도 더 쌓고, 해자를 수십 리나 파도 점점 커지는 짜증을 견딜 수 없다. 아닌 말로 떼돈 벌겠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첫새벽에 나서는 게 한두 번이면 감수할 수 있다. 이건 주말이나 휴일에도 교육 등 스케줄을 잡아놓아 쫓아나가야 하니. 이른 시각임에도 해는 어찌 저리 크고 뜨거운가. 다들 가속페달에 발을 올려 놓아 차들이 '으르릉'댄다. 너도나도 에어컨을 가동해 간선도로가 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괜히 눈총 받을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자괴감도 드는 판국에 이를 핑게 대며 지각한다는 건 심정적으로 싫다. 여기에 출퇴근이 기본이라며 설파하는 이가 날마다 침 튀기며 눈치 주는 통에 마냥 속 끓일 수도 없는 노릇, 고심 끝에 사무실 근방에 오피스텔을 하나 구했다. 일단 간편하게 지내자고 작정했는데, 계절이 바뀌기도 하고, 불편한 생활을 해소한답시고 한둘씩 세간살이를 장만하는 바람에 마음속 여지까지 채워진 기분이다. 불안스런 제 애비 심정을 눈치챘을까. 바쁜 중에도 주 두어 번은 들르는 아이가 염려한다.
"아부지, 김치라든지 반찬 좀 챙겨갈까요?"
"그럴 필요 없다. 근방에 반찬 잘하는 집 많아. 게다가 이마트 있지, 시끄러운 홈플러스에라도 언제든지 쫓아가면 돼."
"거기 반찬이 입맛에 안맞을텐데요?"
"얌마, 맞추어야지. 끼니마다 미식을 구할 수는 없잖아."
호기롭게 뱉지만 만만찮은 가격의 반찬이 입에 달라붙기는 어렵다. 또한, 시식때와 달리 넣어두면 맛도 쉬이 변질된다. 이참에 시장 반찬이라도 알아볼까 하여 제대로된 맛을 구하러 헤매기도 한다. 헌데 발품을 팔아도 맛이 우선이 아닌가 보다. 어느 상가 마주한 반찬집 사이에서 망설이기도 한다. 여기가 좋을까, 아니면 저기가 나은지. 후각을 벌름거리며 나름대로 색깔 등을 따지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 중 분주한 아주머니쪽으로 딱 돌아섰는데..... 두어 가지를 고르다가 금방 후회했다. 몸집이 구랍 백킬로그램은 너끈할 아주머니가 왜 그리 퉁명스러운지. 반찬 담을 비닐을 열기 위해 손가락에 침 바르기는 예사, 자기 생각뿐이거니와 친절하지 않아 대할수록 속이 부글거린다. 결제를 현금으로 내라는 당연한 말을 들으며 주저했다.
'그래, 오늘만이야.'
달랑 반찬봉지를 들고 뒤돌아서는 내게 뭔 악감정이 있는지, 입을 삐죽이는 모습도 선하다.
남도쪽 출신인가, 젓갈이 버무려진 반찬은 제법 그럴싸하다. 거기까지 뿐, 두 번 다시 그 집에 들르지 않았다. 사무실 아래 대형마트를 이용하곤 했는데, 나중 짐을 주렁주렁 들고 이동하는 게 못마땅하여 자연히 오피스텔 가까운 상가를 이용한다. 상가 안쪽 수산물공판장 마트가 있어 대개 술이나 과일 등을 챙겨 나오는 게 일이었는데, 그날은 우연히 전번 퉁명스러운 반찬가게 맞은편에 눈길이 갔다. 내색하지 않고 기웃거리는 순간 가게 아주머니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나붓이 쫓아나왔다.
"요즘엔 열무반찬이 맛있어요."
"여기도 젓갈을 쓰나요?"
"젓갈이야 당연히 들어가지만 그걸 싫어하는 분도 많아 표가 나지 않는답니다."
"미리 맛볼 수는 없네요."
"정성으로 담는 반찬이기 때문에 한번 사 가신 분이면 꼭 다시 들르게 되어 있어요."
술쩍 명함을 집어 내미는데, '요리연구가'란 수식어가 버젓하다. 그래? 이 바닥도 만만찮은 걸. 동조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사람 대하는 게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맞은편 가게에 정나미가 떨어진 터라 유난스러운 아주머니에게 홀려, 그날은 사지 않아야 할 반찬까지 챙겨왔다.
헌데 깔끔한 맛은 아니다. 개운하지만 어쩐지 뒷맛이 모자란다. 한번이잖아. 단언할 수야 없겠지. 살가운 웃음짓을 떠올리며 며칠 뒤 그집에 다시 들렀다. 맞은편 우람한 몸집의 아주머니를 애써 무시하면서. 헌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가게 안에 누군가 있다. 동생인 듯한 이와 말다툼 중이었는지 거북한 안색으로 맞는데, 아하! 보지 않아야 할 민낯을 보는 기분이 이렇구나. 왜! 사람의 본색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런 민망함을 마주하자 친절 이면 속내를 들여다 본 듯하여 내가 어쩔 줄 모른다. 싸준 반찬을 받아 어리버리 나왔는데, 정작 견딜 수 없는 건 나이다. 흐르던 물길이 무엇엔가 가로막혀 소용돌이친다. 사람을 대하는 게 산 너머 산이다. 이런 이도 있고, 저런 이도 있는데 내게 맞추려는 억지가 밉다. 굳이 선을 긋고 갖다 맞히려는 고집이 미련한지도 모른다.
식탁에 있는 마른 반찬을 보고, '어디서 샀는지?' 물으며 내막을 아는 아이가 장난스럽게 '실실' 웃는다.














Raphael Veronese, Memorias De Um Grande 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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