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생활인 걷기

*garden 2017. 8. 14. 11:55





제대로 서지 못한다면 안타깝다. 어느 때 무릎이 찢어져 뼈가 드러날 정도로 다쳤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라구. 나야말로 '이 정도야' 싶은데, 상처를 들여다보는 의사나 간호사 등은 심각하다. 결국 찢어진 살을 온통 도려낸 다음 십여 센티미터 정도를 꿰맸다. 뼈도 찍어서 살펴봐야 하고 정신적인 상태도 점검해야 한다는데. 아무렇지 않던 나는 졸지에 중환자가 되어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럴 때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함께 걷기'에 동참해 달라고. 그게 우습다. 걸으면 되지. 어찌 함께 걸어야 하고, 또 멀리 차를 타고 나가서까지 걸어야 하는 절차까지 있다니. 헌데 세상에나, 걷기도 우습게 볼 게 아니다. 나잇살 지긋한 분들까지 전문가에게 묻듯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걷는 게 좋습니까?"
"신발은 어떤 걸 신어야 할까요?"
"무엇무엇을 준비해서 걸어야 할까요?"
너무나 당연한 걸 너무나 심각하게 질문하는 바람에 내가 의아하다. 허긴 절차도 생각지 않고 막 살고 막 걷는 내가 잘못이다. 새삼 눈을 떴다. 목표점까지 가장 빠른 길을 정하고 가장 빨리 달려가기를 즐기던 내가 에돌아간 길을 찾고 돌아보며 천천히 걷게 되었다. 추우면 중무장을 하고, 더우면 간편복장으로 새벽 두시에도 길에 나서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본다. 걷기가 놀이이고 생활이어야 할텐데. 걷기에도 급이 있다.

길에서 온전하게 나를 세울 수 있으면 초급 단계인 구급이다. 모름지기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다음으로 길을 살필 수 있으면 팔급이다. 내가 서있는 곳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칠급은 완급을 조절하며 걸을 수 있는 단계이다. 걸어야 할 길을 알고 구간구간을 구분하여 조화롭게 걸어야 한다.
눈을 뜰 수 있으면 육급이다. 걷는 길에서 익숙한 것을 찾고 맞닥뜨리는 새로운 것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다.
마음까지 열리도록 할 수 있다면 오급이다. 내쉬고 받아들이는 숨을 조절하며 자연과 내몸이 동화되도록 한다.
사급은 길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단계가 되면 산길이나 물길을 가리지 않고, 오르막이나 내리막을 평지처럼 걸을 수 있다.
길에서 만나는 것들마다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삼급이다. 이 단계에는 소통이 자유자재여서 웬간해도 지칠 줄 모른다.
길은 세상 어디에나 있으며 사방팔방으로 통한다. 길이 있는 곳을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있다면 이급이다.
일급은 길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경지이며, 세상을 내 발 아래 둘 수 있다. 비로소 걷기의 달인이 된다.
오늘 그대는 어느 길에 서있는가. 진정 걷기의 달인으로 부를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몸을 세우고 똑바로 걸었는가. 한발한발 떼며 힘든 지경에도 묵묵히 걸어 길에서 만난 친구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었는가.














Eldar Mansurov,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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