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시 사십오분에 도착한다는 버스가 오분이나 일찍 왔네. 올라탔어. 웅성대던 사람들이 제풀에 잠잠해졌지. 기사가 불을 껐어. 차 안 정경이 뒷자리에서는 그대로 눈에 들어와. 게슴츠레하게 어둠을 노려보았지. 서두르는 바람에 다들 잠을 설쳤겠지. 사이클로이드 곡선 주로인가. 기사가 힘 주어 운전대를 틀었을게다. 눈을 감은 채 일제히 쏠리는 사람들. 자세가 돌아가는 중에 누군가 '쩝쩝' 입맛을 다셨어. 나도 그만 깜박 잠들었나 했더니, 차창으로 스며든 햇살이 눈을 찔러. 커튼을 내릴까 하다 관두었지. 챙 넓은 모자를 눌러 쓴 옆자리 여자는 세상이 어떻게 되던 상관없나 봐. 미동도 않고 눈을 감고 있네. 어젯밤 뇌리를 스치는 게 있어 크나큰 작정을 했는데, 그게 뭐였더라. 아무리 궁리해도 생각의 말미가 떠오르지 않아. 모두 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흘러가는 풍경. 고속도로를 몇 개나 거치고 한참 만에야 닿은 남도 삼백리 길. 눈이 부셔 아찔했어. 배낭을 챙기면서도 속으로 '하낫둘' 세었어. 침착하려고 애썼어.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근심스럽게 나를 보는 것 같아. 숨고 싶지만 숨을 데가 없어. 난전을 편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들고는 무어라고 해. 나즉한 사투리가 정겹긴 한데.
한때 듣고 또 듣던 음악들. 나야 지금 들어도 기분이 새록새록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나 봐.
'이게 뭔 노래야?'
하는 이도 있던 걸. 아마도 익숙한 구절이 되풀이되고 빠른 비트가 판치는 K-pop 등에 익숙해져 있어 의미 없는 멜로디로 들릴지도 몰라. 듣고 있으면 잠이 온다면서, 생뚱맞게 혼잣말을 내뱉는 여자아이도 있었어. 덧붙여 설명해 준들 들으려고나 하겠어. 감정 없이 받아들이고 지나쳐야지. 환한 햇살 아래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밤송이. 알밤이야 부지런한 이가 주워 갔을걸. 성큼 다가온 가을. 어젠 날이 종일 찌푸린 시어미 상이었는데, 종잡을 수 없네. 여기가 선암사야. 들르면 꼭 가 보라던 해우소가 어떨까. 머리를 흔들었지.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더니 버스 옆자리에 있던 여자가 지나가는 게 보여.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앞만 보고 쫓아가네. 어슬렁거리며 걸은 산길. 십팔킬로미터가 넘는다고들 난리 법석이야. 지친 감이 없는 나는 어리둥절해. 짱뚱어탕이라도 한 그릇 할까 해서 물어봤더니, 여기서 오십분 정도는 차로 가야 한다니 포기해야지. 그녀의 창백한 낯을 떠올리며 흥얼거리는 노래가 지난 하루를 되새김질하게 만드네.
'A Whiter Shade Of Pale'은 'Procol Harum'의 '1967 데뷔 앨범 타이틀 곡이다.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 5위까지 오르며 앨범도 600만 장 이상 팔렸다. 발췌곡은 이후 많은 그룹에 의해 연주되어진 명곡으로, '2004 'Rolling Stones'지에 의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500대 노래 중 57위, 영국 TV 방송국 Channel 4에 의해 100대 싱글 곡 가운데 19위에 선정된 노래다. 동영상은 '2006 Live In Denmark 모습이다.
Procol Harum은 R&B 그룹으로, 'The Paramounts'에서 보컬을 담당했던 Gary Brooker가 그룹이 해산된 후, Keith Reid, 오르간의 Matthe Fisher, 기타의 Robin Trower, 베이스 주자인 David Knight 등으로 1967년에 결성했다. 'A Whiter Shade Of Pale'은 'Bach'의 'Suite No.3 In D Major'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Hammond Organ을 담당하고 있던 Matthew Fisher 연주가 인상적이다. 철학적이고 난해한 가사는 그룹 일원이자 시인이던 Keith Reid가 만들었다. 영국시인 G, Chaucer 최고의 걸작이자 최후의 작품인 'The Canterbury Tales'에서 발췌했다는 말이 있는데 근거는 애매하다.
We skipped the light fandango
Turned cartwheels cross the floor
I was feeling kind of seasick
The crowd called out for more
우리는 판당고 춤을 추었어
홀을 가로질러 재주를 넘으면서
멀미가 날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더 하라고 떠들어댔어
The room was humming harder
As the ceiling flew away
When we called out for another drink
But the waiter brought a tray
방 안은 천장이 들썩일 정도로 더욱 웅성거리고 있었어
우리가 술을 더 시키자 웨이터가 쟁반을 가지고 왔어
And so it was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너무 늦었어
술집 주인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 놓자
그녀 얼굴이 처음에는 유령처럼 하얗게 되다가
더욱 창백하게 변했어
She said there is no reason
And the truth is plain to see
But I wander through my playing cards
그녀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진실은 명백해 보여
그러나 카드 게임을 하면서 난 궁금했어
And would not let it be
one of the sixteen vestal virgins
who are leaving for the coast
그녀가 해안을 향해 떠나는
열여섯 명 수녀 중 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걸 막을 수 없었어
And although my eyes were open
They might just as well been closed
비록 나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감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And so it was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너무 늦었어
술집 주인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자
그녀 얼굴이 유령처럼 하얗게 되다가
더욱 창백하게 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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