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적대는 앞차. 한숨을 뱉는다. 미적거리며 다른 차를 두어 대나 끼어들게 하질 않나. 어정대는 바람에 신호를 몇번 놓쳤다. 이건 안돼. 마음을 조이며 틈이 보이는 순간 추월했다. 안도하는데 또다른 차가 오른편 차선에서 슬쩍 끼어들었다. 이런! 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나. 쫓아가도 앞질러도 소용없는 질주. 옆자리에서 눈치 보던 아이가 기어이 한마디 한다.
"바쁜 일도 없는데 천천히 가세요."
"엇, 그렇게 할까!"
식탁에 올려둔 손전화기가 시끄럽다. 어느 순간 단톡방에 새 글이 잔뜩 올라와 있다.
'운동 좀 하고 오셔야 합니다. 저는 요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요. 그러지 말고 이번 주말에 가볍게 산 한번 탈까요? 허걱, 큰 산을 앞에 두고 우선 몸조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와글거리다가 일행 중 말 없는 내게 화살을 돌린다.
'그런데 형님은 왜 아무런 기미가 없을까요!'
괜한 시비이다. 이런저런 제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허나 어디를 가든 오르든 간에 약속 당일 짐을 챙겨 나섰다. 물론 사전에 몇몇이 톡을 날린다. 아마도 불참할까봐 확인하려는 거다. 가급적 감정이 드러나는 걸 절제하며 간략하게 답한다.
"그날 봐요!"
해가 바뀌어서인가. 의미 없지만 몇 시간 전과 이렇게 다르다니. 다리가 풀려 엉킬 정도이다. 여지껏 초반 무렵인 오르막을 쳐다본다. 앞선 일행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거침없이 뭉쳐 쫓아나가는 입김.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내를 하나 건너야 하고, 다음에는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한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려고 애쓴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남아 나를 챙기려고 애쓴다. 그게 성가셨다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아는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린다. 하마, 거위, 물개, 돼지..... 거위는 잊어 버리자. 이 녀석이 어느 때 이곳저곳 빠지지 않고 나오더니 제 아이 결혼을 시키고서는 발걸음이 없다. 세상 인심이 그런건가.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기억하는 나야말로 재섭는 존재이지 않을까.
차츰 인파가 몰려왔다. 새해 원단에 뭔가 이루려는 소원 행렬인가. 오를수록 냉기가 배낭이나 재킷 등에 서리꽃으로 핀다. 잠깐 주저앉아 있었더니 앞선 일행이 독촉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일행이 나와 함께 있다가 고갯짓을 한다. 먼저 가라는 데도 굳이 가지 않는 건 저도 힘들다는 얘기. 아무렇지 않은데 내가 힘을 못쓰는 건 왜일까? 우선 잠을 못잤다. 공항에서 나와 이것저것 챙길 게 많았다. 나중 늦은 식사를 하면서도 분위기 때문에 괜히 술을 한병 더 시켰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운전하느라고 애쓴 후배와 다시 한병 더 마시지 않았던가. 그리고 눈을 붙일까말까 하다가는 새벽 두시에 쫓아나왔다. 까마득한 대피소와 정상을 그리며 배낭을 짊어졌다. 가파른 길을 걸음 수를 세며 오른다.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냐.... 중얼거린다. 일부러 발로 눈 재인 바닥을 꾹꾹 딛으며 다리 근육을 긴장시킨다. 절망으로 죽음만을 떠올리던 어느 때를 기억해냈다. 두팔 벌려 사신이라도 받아들일 것만 같던 암울함뿐이었지. 죽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아아! 그렇게 죽을 수도 있었구나 하며 부러워하던 미망과 고뇌 들. 어서 그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면서, 그래서 지난 다음의 나를 기꺼이 감내하리라 입술 깨물던 어둠도 지나왔는데. Albinoni의 'Adagio'를 허밍으로 소리내 보았다. 나무 위에 얹힌 차가운 눈이 어깨 위에 '투둑투둑' 떨어졌다.
I was hoping to see the first sunrise in the new year, but I was glad. It did not come out of the clouds, and it made people who suffered from chaebolmen sad. I looked away from the crowd and looked up at the sky. I am alone in the world. I screamed loudly to cut down on the chest.
다음 날 안개 자욱한 한라산에 다시 올랐다. 이번에는 한달음에 올랐다.
Melody Of The Night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