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을 거기, 여명

*garden 2018. 11. 14. 02:30




사방에 뭉쳐 있는 안개. 지척이 분간되지 않는다. 뿌연 속을 더듬는 장 소장, 당황스런 기미를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운전대를 두 손으로 잡았다. 조심스레 나아가지만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덮칠 것만 같은 분위기이니. 가도가도 물러날 기미 없는 이 몸통을 어이하나.
"오리무중이네."
이른 새벽 부산떨며 씻고 쫓아나온 말끔한 얼굴이 굳어 있다. 뭔가 보여 주려는데 여의치 못하다. 사내 셋이 들어간 여관 방이 주인 여자 호언장담과는 달리 추웠다. 밤새 웅크린 근육이 풀리지 않아서일까. 군데군데 억눌린 듯한 기분을 떨쳐야지. 경락을 받는 것처럼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해본다. 휑뎅그렁한 들판. 일찍 벼를 걷어낸 자리에 다시 싹이 틔워졌다. 악착 같은 그 푸르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갈림길에서 우리와 엇갈려 다른 논둑으로 들어간 트랙터 한 대가 시위 하듯 건너편을 오간다. 기온이 어느새 이리 떨어졌을까. 서리 내린 이곳. 가을이 희미하다. 풍경을 담는 동안 오싹하다. 손이 시려 입김으로 녹여야 했다. 즐겨 듣던 바흐보다 오늘은 라흐마니노프나 브람스가 어울린다. 생각이 드러나는 것을 막아야지. 침묵하다가도 이야기를 잇다 보면 천만 갈래로 갈라지는 걸 느꼈다. 정념이야. 오랜 시간 품어온 집착일거야. 바야흐로 속을 드러낸 가을. 아직은 먼산 푸르른 빛과 어울린 담홍색과 이를 받힌 적갈색 단풍으로 타오르지만 순간일 뿐이야.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메마른 풀더미 사이 방호벽에 치렁치렁한 핏빛 담쟁이들도 어제 지나친 시간처럼 금방 사그라들 게다.
해가 떠올랐다. 빛이 몰려든다. 안개 더미가 바람에 얹혔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이러했을까. 쫓기는 안개를 넘어 사물이 윤곽을 드러냈다. 가라앉아 있던 들이 생기를 띤다. 겹겹이 드리운 나무들이 우쭐댄다. 층층 숲과 산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가까운 누구에게나 친근한 조 선생. 찬탄을 머금었다.
"옴마야, 어찌 이런 풍경이 만들어질까!".
만면에 희색을 띠고 뭉클한 세상을 치하하듯 그가, 셔터를 그치지 않았다.
But My fall feast is over.



























































Mark Pinkus,
Time To For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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