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우리 사는 이야기

*garden 2019. 2. 12. 00:42





그대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저런!' 하고 놀라기에 앞서 무덤덤하게 받은 건 '설마.....' 싶어 심각성을 채득하지 못한 탓입니다. 이제서야 변명처럼 늘어놓는 말입니다만 별일 아닌 것처럼 훌훌 떨쳐 먼 훗날, 지난 이때를 상기하며 웃음을 버무린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살아오면서 한두 번 겪은 병마인가요. 외부 상처로 부자연스럽던 내 행동. 몸 안에서 발병한 좋지 않은 부분이 내 삶을 갉아먹던 일 등 병이 우리를 괴롭힌 적이 종종 있었지요. 시시각각 드러낼 수 없는 불편을 야기하던 병으로 어느 때 '내가 사는 일이 과연 이럴려고 여기까지 버텨왔나' 하는 자괴감에 쓴웃음을 지은 적도 있습니다. 중절모에 때깔나는 모시적삼으로 단정하게 차린 외할아버지가 사랑채를 나서면서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음 달던 기억을 떠올릴 때도 있습니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이 덕지덕지 묻은 생의 고통으로 침해 받는 게 우리 미래 일정일까요. 어느덧 몇분 남지 않은 일가 어른들을 더러 뵙습니다. 그 어른들이 곧잘 제 손을 잡습니다. 어릴 적 저를 보듯 귓볼도 만지작거리고, 어깨도 토닥입니다. 견디고는 있지만 여기저기 탈나고 불편한 어깨나 허리, 무릎 등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합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합니다.
"나이가 드니 병이 친구처럼 따르나 봅니다. 힘드시면 연락주세요. 제가 모시고 병원엘 가겠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찾아드는 병. 그 병이 우리 생활을 저해하고 힘들게 만듭니다. '지금 죽어도 호상'이라며 던지던 호기로운 농담을 기억하나요. 압니다. 감히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할 수 있냐구요. 그런 농담을 하면 안된다고 정색하면 입 다물어야 할까요, 아님 계면쩍게 웃어야 할까요. 삶과 죽음이 백짓장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경계 없어 부득불 지난 다음에야 가슴 쓸어내린 기억이 많습니다. 삶이야 간단없이 이어져 그 한날한날을 다 떠올리기가 버겁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단계이지요. Y가 어느 때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던, 전기가 나가버리듯 그렇게 방전되어 기억이 뚝 끊어지는 일일까요. 궁금하지만 살이가 바쁜 참에 거기까지 몰두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를 빌미로 종교를 권하는 이도 더러 있습니다. 글쎄요. 사후 세계를 위해서 저축 하듯 살아있는 동안 뭔가 해야겠지만 개인적 입장으로 썩 내키는 투자는 아닙니다.
"갸 어떻대?"
소식을 듣자말자 열일 제치고 올라오다가는 혼절했다는 일가붙이 이야기도 눈물겹습니다. 개미처럼 똘똘 뭉쳐 오직 한 생명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가족이 눈에 선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려고 살아온 건 아니지만 가족이 온 마음을 모으는 의미 있는 단초가 됩니다. 살아도 살아있지 못한 듯 살아가는 이도 있고, 죽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한 기억이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합니다. 선현들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받아들여지는 때입니다. 이 다음 시간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는 이 누가 있겠습니까. 살고 죽는 걸 점지하는 이가 따로 있는지 모릅니다. 하루도 아니고 한 시간을 간절히 원해도 받지 못하고 간 이가 수두룩합니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남은 제 생을 뚝 떼어 나누는 일도 서슴치 않겠지만 이도 앞뒤 모르는 철부지 하소쯤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겁니다.
부디 그대여! 위중한 병 앞에서도 그대 생이 비루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믿습니다. 꽃다운 그대 아름다운 날에 어쩌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낯 찌푸리는 일도 있겠지만 참고 또 참아야겠지요.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다 눈물 흘립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너나 없이 얼마 남지 않은 이승에서의 귀한 틈을 내 따뜻한 밥 한끼 나누면서 눈빛 한번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모르는 일, 죽음이 너와 나를 갈라놓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영원한 삶을 꿈꿉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만큼 안도하고 또 안도합니다. 언제나 그대를 그립니다. 오늘 저녁 누군가 제게 신을 믿으라더군요. 그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감히 말합니다.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시작이겠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일 뿐입니다!






















Michele McLaughlin, Into The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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