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잃었다. 모임을 마치고 밤 늦게 돌아오다가 통화한 기억이 있는데, 어디 갔을까. 택시에서 빠뜨렸나 보네. 카드 결제를 했기에 이를 근거로 연락하자 택시기사는 발뺌부터 한다.
"아빠, 제가 '친구찾기'로 알아볼게요."
아이가 행방을 알아보는데, 며칠간 켜진 흔적이 없단다.
"아이폰은 주워도 돌려주지 않는다더니 정말이네. 어쩌나? 오래 사용했으니 이번에 새로 장만하세요."
"거기 저장된 최근 자료 때문에 그러지."
전화기를 개비하는 거야 별거 아니지만 아쉽다. 손에 익은 그립감이라든지, 조작이 익숙하도록 깔아놓은 앱들이 눈에 선하다. 더러 길거리에서 낯선 전화기를 두어 번 주웠다. 기꺼이 연락하고 갖다 달라면 쫓아간 기억도 있는데, 나야말로 이게 뭐야. 투덜거리지만 소용없다. 해서 당분간 전화기 없이 살기로 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불현듯 내게 연락하려는 이들이 막막한가 보다.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핑게 김에 담벼락을 쌓은 나도 별수 없이 세상에서 멀어진 듯한 낌새를 지울 수 없다. 클라우드닷컴에 접속해서 무언가 알아보려고 해도 기기에 암호를 입력하라니 어이가 없다. 무인도에 나앉은듯 고립무원으로 지내기를 두어 주, 안되겠기에 전화기를 새로 개통했다.
헌데 문제는 더욱 커진다. 갤럭시로 기기를 바꾸자 성가신 일이 한두 가지여야지.
연락처가 말살되어 전화가 와도 누군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어 건성으로 대꾸한다. 술자리에 모여 있는 중에 전화기가 울린다. 주변이 시끄러워 손전화기를 귀에 밀착시켰다.
"아, 예."
"......"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헌데...."
상대가 당황한다.
"아이, 아빠. 왜 그러세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번 봅시다."
"그려요, 오늘 괜찮습니다만 어디로 갈까요?"
"잘 됐네. 강남역에서 일곱시 정도에 어때요?"
"네, 시각에 맞춰서 나갈게요."
할 일이 있어도 서둘러 뭉개고 일어났다. 약속 시각보다 이른 참이다. 여유 있게 지하철에 올라 사람들을 보는데, 엉! 뭔가 빠진 듯하다. 너도나도 액정화면에 눈길을 두고 있는데, 나야말로 바지 주머니를 뒤지는데 허전하다. 이것 봐라, 전화기를 두고 왔네. 다시 돌아가기엔 시간이 안된다. 이왕지사 지하철에 올랐으니 약속 장소엔 가야지. 헌데 강남역이 오죽 넓어. 거기에다가 복잡하기는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억울하다. 쫓아나와 사람이 붐비는 속에서 서 있는데, 아득하다. 전화기가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공중전화를 찾아도 전화카드라도 있어야지. 근처 약국에서 잔돈이라도 바꿔왔지만 전화번호를 당최 알 수 없다. 연결된 사람들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없으니 그 누구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다. 바보가 따로 없다. 편하게 사느라고 잊어버린 기억들. 저장된 번호 아니면 알 수 없는 숫자들.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속에서 생각 없이 나도 둥둥 떠다닌다.
비발디 조화의 영감(L'Estro Armonico) Op.3, 제10번을 바흐가 '4대의 쳄발로와 현을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했다. 세월이 흐르며 쳄발로가 피아노로 바뀌었다. 스위스 베르비에에서 매년 펼쳐지는 페스티벌 10주년을 기념하여 모인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꿈의 연주회 실황 녹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