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꽃 몸살

*garden 2019. 4. 13. 09:37













늘 어딘가 아픈 아내. 허리가 아파 잘 일어서지도 못하던 며칠 전과 달리 이번에는 양 어깨가 결린다며 우거지상이더니, 하루가 지나자 무릎이 이상하단다. 으레껏 병원에 다녀오라고 이르지만 우물쭈물한다. 병약한 체질도 아닌데, 왜 그럴까.
급한 일로 누군가를 만나야 할 일이 생겼다. 개인적인 일로 회사를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궁여지책으로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내를 대신 보내기로 했다.
"오늘 갔던 일은 어찌 되었나?
"그게.....!"
"왜, 무슨 일이 생겼어?"
굳은 내 시선을 피하며 사정을 늘어놓는다. 아침에 준비해서 서둘러 출발했다. 지하철 두어 정거장을 지나쳤을까. 현깃증이 나 전동차 손잡이를 꼭 붙잡고 버텼지만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복잡한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긴의자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외려 투덜댄다.
더러 귀나 눈이 아프기도 했다. 눈이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면 손을 내젓는다. 서둘러 병원에 가자는 나를 잡아앉히고는 집에 전화를 한다. 전부터 그런 증상이 있어 왔다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병을 낫게 하는 특단의 주술이라도 받은걸까. 집 안 어딘가 못을 잘 못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장도리로 못을 빼고 우표를 사 와서는 거기 붙여둔다. 웃을 수도 없다. 해괴한 짓이라며 면박 주기엔 자못 진지하지 않은가.
거기 비하면 나야말로 아픈 기색이 없다. 초인 기질이 있어서일까. 이것저것 따져 봐도 그건 전혀 아니다. 나는 아파도 아픈 내색 없이 사는 게 훈련되어 있지 않을까나. 어쩌면 이기적인 증상 같지만 내내 불편한 아내는 내게 관심이나 사랑의 손길을 바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어떤 때는 된통 앓았다. 감기몸살이 지독해 몸을 가누기 힘든 데도 회사 야근까지 마치고 왔다. 질린 나를 본 아내가 섬뜩했나 보다. 열이 들끓었다. 이마에 물수건이 얹히기도 한다. 밤새 간호를 받으면서도 기력이 소진되어 반응하지 못했는데, 새벽녘에야 깜박 잠들었다. 이승과 끊어진 곳인가. 심연이라더니 깊기도 하다. 방향 좌표나 아래위를 분간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곳을 헤매다 문득 눈을 뜬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베갯잇이라든지 덮었던 이불이나 바닥 요가 땀에 젖어 후줄근하다. 부시시 일어난다. 커튼을 걷었다. 아아, 다시 보는 세상. 관절을 움직여 보았다. 꺾이고 맞춰지는 소리가 난다. '됐어!' 별 뜻 없이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어디서 나는 꽃 향기일까. 무언가 쏟고 쫓아버린듯 개운해진 빈 몸이 가벼워 허공 중에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무도 그렇지 않을까. 겨우내 움츠린 몸을 떨며 몸살에서 깨어나듯 눈뜬 어느 새벽. 기지개를 켜며 봄을 부른다. 앙상한 가지마다 생기를 뿜어올려 부풀린 꽃몽오리로 꾸는 새 세상을 위한 꿈.
예전과 달라 겨울과 여름이 길다.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봄가을. 기다리기엔 짧다. 서둘러야지. 하지만 이런 봄날도 위태스럽다. 강원도에선 폭설 소식 대신 건조해진 산간을 휩쓴 화재로 우리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Piano Concerto No. 5 in E flat maj or 'Emperor', Op. 73








II & III Mov. Adagio un poco mosso &
Rondo Allegro (17:44)


Hélène Grimaud piano
Vladimir Jurowski cond.
Dresden Staatskap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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